이미지 크게보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웹툰 ‘잡다한 컷’의 한 장면. 잡다한 컷은 회사 생활의 애환을 코믹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내 젊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네이버 웹툰 제공

- (17) 근로윤리 생각차이

4050에겐 성실함이 제1덕목
“젊은 세대 쉽게 일하려 한다”

2030은 자아실현·가정 중요
“내 일 다했는데 왜 야근하나”

회사 겁나는 청년들 公試 몰려
옛 방식 고집땐 인재 놓칠수도

성장환경 다른 2030-4050
달라진 세상 상호이해 노력을

수요일 오후 6시 30분. 정 부장은 “오늘은 칼퇴(정시 퇴근)해서 와이프한테 봉사해야지. 어서 들어가 봐”라고 김 대리(29)에게 말했다. 김 대리는 “네 부장님,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라고 답했고, 정 부장은 자신이 개념 있는 상사가 된 것 같았다. 김 대리에게 업무 지시사항이 한두 개 남아 있긴 했지만, 내일 전달하려고 한다. 정 부장으로서는 나름의 배려를 한 셈이다. 김 대리는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같은 팀 동료에게 말했다. “어휴, 꼰대 정 부장. 제시간에 퇴근시켜주면서 인심 쓰는 것처럼 말하다니. 칼퇴근이 웬 말이야. 규정상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거지. 퇴근하는 게 꼭 죄짓는 것 같다니까.”

우리나라 일터에는 정 부장과 김 대리 같이 다양한 세대가 공존한다. 한국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40대 후반~50대 직장인,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회적 환경에서 성장해 저성장기에 취직 문턱에 들어선 20~30대 직장인, 이 두 세대의 ‘근로 윤리’는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빠르게 발전하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기성세대는 누구보다 일찍 사무실의 불을 켜고, 남보다 늦게 사무실을 나서는 성실함이 직장인의 제1 덕목인 시대를 살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연간 노동시간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최장시간 근로가 만연한 한국의 일터 문화는 이런 기성세대의 근로 방식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반면 20~30대 직장인에게 장시간 근로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가정은 일터 못지않게 소중한 공간이고, 일터에서의 ‘생존’보다는 ‘자아실현’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저성장·저출산 시대로 진입한 한국은 고용문화 개선과 일·가정양립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이러한 직장 내 세대 간 갈등을 지혜롭고 빠르게 극복할 때, 직장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 꼰대, 누가 안 잡아가나요”= 대기업 취직 2년 차인 김 대리는 입사 후 줄곧 보수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회의감을 떨치기 힘들다. 김 대리는 “일주일에 2~3일 야근은 기본이라 몸은 피곤한데, 하루하루 내가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야근을 성실함의 지표로 여기는 정 부장은 사무실에서 개인 블로그를 하고 영화를 보면서도 회사에 붙어있기만 하면 열심히 일한다고 합리화한다”고 토로했다. 김 대리는 “맡은 일을 다했어도 야근을 하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정 부장에게 찍힐 것이 뻔하기 때문에 업무처리 속도를 굳이 높이지 않는다”며 “나중에 내가 정 부장처럼 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고, 언제까지 회사에 붙어있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LG전자 프랑스 법인을 10년간 이끈 프랑스인 CEO 에리크 쉬르데주 역시 경직적인 한국기업의 조직 문화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바 있다. 그는 2015년 저서 ‘한국인은 미쳤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들은(한국인은) 회사생활을 무한 반복해서 살고 있으며, 그것을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서 진짜 즐거움을 느낀다. 이 때문에 한국인은 컴퓨터와 전화기 앞에서 하루에 12~14시간씩 보내도, 휴식시간이라고는 각각 45분의 점심과 저녁, 그리고 5분 정도 담배를 피울 시간밖에 없어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삶은 기업에 바쳐져 있다. 회사 밖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자아실현도 상상할 수 없다.”

자아실현 불가능이라는 쉬르데주의 지적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런 한국사회의 경직적인 일터 문화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올해 상반기 대한상공회의소와 글로벌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내놓은 ‘한국 기업의 조직 건강도와 기업문화’ 진단 결과를 보면, 평균 수준의 야근을 하는 직장인의 업무 생산성은 57%인 반면, 주5일 야근을 하는 근로자의 생산성은 45%에 불과했다.

◇“젊은 세대, 직장 너무 쉽게 다니려 해”= 최근 들어 직장 내 세대 갈등 해소를 위해 기업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기업이 적지 않지만,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20~30년에 걸쳐 내면화된 근로 윤리는 기성세대 입장에서 편할 뿐만 아니라, 조직문화를 함부로 바꿨다가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떨쳐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의 말단 직원에서 시작해 임원을 지내고 올해 1월 퇴직한 김모(60) 씨는 “우리 때는 회사를 위해 가정을 어느 정도 소홀히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희생 없이는 살아남기가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근무환경이 훨씬 나아졌는데도 회사 생활을 힘들어하는 직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문화도 변해야 한다는 건 인정하지만, 설렁설렁 일하는 문화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했다.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는 인식하더라도 마음까지 흔쾌히 동의하지는 않는 상황인 셈이다.

◇취직이 겁나는 청년들 =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에는 4120명 선발에 22만2650명이 몰렸다. 경쟁률이 54대 1이다. 워낙 취업 문이 좁아 응시자가 몰린 탓도 있지만, 민간기업에 취직해 경직적인 조직 문화와 장시간 근로를 감내하면서 사느니 월급은 적어도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되는 9급 공무원의 길을 걷겠다는 젊은이들이 느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중학교 시절 대기업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모습을 본 최모(32) 씨 역시 이런 경우다. 최 씨는 대학졸업 후 취준생 신분으로 2년간 공기업 입사 시험에 매달린 끝에 취업 문을 뚫는 데 성공했다. 그는 “어렸을 때 자식들 얼굴을 일주일에 한두 번도 못 볼 정도로 회사밖에 모르고 산 아버지가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직장을 잃었고, 회사는 아버지의 가족을 책임져 주지 않았다”며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회사 대주주가 아닌 이상 가정이 우선이라는 가치관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14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생’은 한국 직장의 현주소를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적인 야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 꼰대 상사의 횡포 등 일터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화들은 젊은이들이 직장 생활에 두려움을 갖게 한다. 서울 소재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여·22) 씨는 “눈이 항상 빨갛게 충혈된 채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민간기업 취직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며 “7급 공무원 시험이나 공공기관 입사를 목표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꼰대 아닌 롤모델이 되려면?= 기성세대도 마냥 옛 방식만 고집하려는 건 아니다. 상향 평가가 일반화하고 있고, 위에서부터 변하지 않으면 젊고 유능한 인재가 조직을 떠난다는 위기의식도 있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꼰대 자가 테스트 항목이다.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을 한다’‘요즘 젊은이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 탓, 불평불만만 하는 건 사실이다’‘후배의 장점이나 직업을 보면 자동반사적으로 그의 단점이나 약점을 찾게 된다’‘내가 너만 했을 때 식의 얘기를 자주 한다’‘나보다 늦게 인사하는 후배가 거슬린다’‘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하라고 해놓고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답을 제시했다’ 등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3월 직장인 9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대의 14.1%는 ‘자신이 사내에서 꼰대로 여겨진 적이 있다’, 51.7%는 ‘자신이 사내에서 꼰대로 여겨진 적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53.2%는 ‘꼰대로 여겨지지 않기 위해 사내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려 애쓴다’(25.0%) ‘반말 등 권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언행을 삼간다’(20.3%) ‘섣부른 충고·지적을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9.0%) ‘필요하고 도움이 될 실무 위주의 조언만 한다’(9.09%)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길은 멀고 험하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