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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 전국부장

우리는 몇 주 동안 태평양의 양쪽 끝에서 일어난 정권의 극적인 탄생과 소멸 과정을 동시에 목격하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초박빙 접전 끝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극적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단순히 한·미 관계뿐 아니라 거대한 세계사적 조류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치명적인 실정으로 현직 대통령이 권력을 내려놓고 국회 중심으로 사실상 차기 정권으로의 전환을 위한 과도정부를 꾸릴 참이다. 둘 다 풀뿌리 민주주의, 피플 파워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100% 대한민국이란 구호가 있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국민대통합을 이야기하며 갖다 쓴 문구다. 공교롭게도 ‘5% 정권’을 구조하기 위해 긴급 차출된 한광옥 현 대통령비서실장이 당시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통합은커녕, 불통과 비선 농단 정권에 3년 8개월을 바친 국민의 가슴은 갈가리 찢겨나간 상태다.

그런데 뒤집어보면 이번에 우리 국민은 95% 공감을 이뤄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꾸짖음이다.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다. 실제 한 고위공직자는 박 대통령이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 부족하던 마지막 한 조각을 채워 민주주의를 최종 완성시킨 반면교사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도 민심이 떠나면 한순간에 무너지고 가차 없이 심판받을 수 있다는 단순한 교훈, 헌법 맨 앞에 나오는 ‘민주공화국’의 무거운 의미를 되새겨줬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다른 2차대전 독립국가 어느 한 곳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땀과 피로 일궈냈다. 그런데도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다. 국민소득 3만 달러가 해법이 아니다. 권위주의의 청산이 진짜다. 1987년 이래 29년이 인신구속 등 기본권이나 공정선거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제도정비 기간이었다면, 이제 민주주의 정신의 본질을 채워 넣을 마지막 화룡점정 고비다. 거국내각이든, 권력분점 개헌이든, 차제에 우리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전근대성을 싹 청소해버리자. 여왕이니, 내시니, 수렴청정이니 하는 전제 봉건시대의 용어들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최고 권력자가 밀실에서 대기업 소유주를 따로 만나 돈을 걷는 후진국형 정경유착 관행도 뿌리 뽑고 싶다. 어린 10대 학생들까지 나라 걱정을 할 정도로 높은 국민의 수준에 제발 사회 지도층이 눈높이를 맞출 것을 요구한다. 약 20년 전 모 재벌 회장은 “정치는 4류, 행정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6·10 민주항쟁의 전통을 잇는 100만 평화시위의 1류 국민에 걸맞은 정부와 사회 시스템을 갖출 때가 왔다. 1987 체제에서 2017 체제로 전진할 역사적 타이밍이다.

만약 권력분점 거국내각이 성립한다면 여야가 함께 참여해 보수와 진보, 산업화 세력과 민주 진영 같은 20세기의 낡은 틀도 깨졌으면 한다. 국민은 미래를 원하고 있다. 지금의 시스템과 사람으로는 안 된다는 게 시대의 명령이다. 100% 만점국가는 100% 민주국민이 만든다. 이것이 미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 벼락같이 생겨난 대변혁의 가장 큰 교훈이다.

nos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