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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8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총리 추천을 요청함으로써 책임총리제의 물꼬를 텄다. 최순실 사태로 비롯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해법은 대통령의 완전한 퇴진(하야 또는 탄핵)이냐, 아니면 2선 후퇴냐로 좁아지고 있었고, 김병준 총리 카드가 불발하자 청와대는 책임총리 수용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헌법상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통할(統轄)한다. 따라서 총리가 대통령의 의사에 반해 국정을 독자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며, 대통령은 언제라도(국회의 동의 없이) 총리를 해임할 수 있다. 그 반면에 책임총리는 국정 운영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 총리를 말한다. 즉, 현재의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이 헌법상 부여된 권한(특히, 내각 구성권)을 행사하지 않고, 총리가 내각 구성을 포함한 국정 운영에 관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대통령과 국회(여야·與野)의 약속을 전제로 임명되는 총리가 책임총리다.

그러므로 책임총리는 국회와 대통령의 약속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책임총리는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헌(違憲)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 극단적인 경우, 대통령은 정치적 약속을 깨고 책임총리를 해임하는 것도 법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 책임이 뒤따르게 되기 때문에 약속을 깨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다 민감한 문제는 오히려 책임총리의 권한 범위다. 즉, 대통령이 외교·안보 등을 비롯한 모든 국정에서 손을 떼고 국정 전반을 책임총리에게 맡길 것인지, 아니면 이른바 외치(外治)는 여전히 대통령의 소관으로 하고 내치(內治)를 총리가 담당하도록 할 것인지, 이 경우 외치와 내치의 구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문제는 대통령과 국회의 합의를 통해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군 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의 완전한 2선 후퇴는 사실상의 하야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란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 자체가 국가적 위기상황이며, 그 핵심 원인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다. 만약 국민의 불신 정도가 외교·안보 등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라면 완전한 2선 후퇴가 유일한 해결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기피할 경우 탄핵이나 하야로 치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치권의 진지한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국민은 대통령과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만일 책임총리의 추천 과정에서 과도한 시간의 소요 또는 인선을 둘러싼 불협화음 등이 문제 될 경우에는 야당으로 유탄이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책임총리의 중립성 및 공정성, 업무에의 전념을 위해 차기 대선 출마 금지 또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금지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누가 책임총리가 되든 그 지위를 이용해 내년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책임총리의 역할이 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임총리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 신뢰를 얻는 것이다. 국민적 신뢰와 지지 속에서만 위기상황의 연착륙과 새로운 미래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