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품이 절대 아니다.” “우리 것은 맞지만 이미 단종됐다.” 국정 개입 의혹을 사고 있는 최순실 씨가 입었던 옷과 신발, 가방 등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자 각각의 (추정) 업체에서 내놓은 답변이다. 최 씨의 자택에서 고가(高價) 구두가 가득한 신발장이 나왔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곧 최순실 패션 분석이 쏟아질 것이다.’ 업계는 긴장했다. 범죄자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의 옷이 화제가 되는, 이른바 ‘블레임 룩 (Blame Look)’ 현상을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최 씨의 검찰 출두 다음 날엔 ‘○○가방, ○○○신발’이라는 구체적인 브랜드명에 판매 가격까지 알려졌다. “별걸 다 쓴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등 일부에선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난했지만, 최 씨의 차림새를 낱낱이 파헤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동안 ‘패션 정치’ ‘컬러 외교’ 등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에 대한 기사가 얼마나 많았는가. 누가 디자인했을까, 브랜드는 뭐지, 얼마일까 등 수많은 궁금증과 의문을 자아낸 박 대통령의 그 의상을 ‘전담’한 장본인이 바로 최 씨였다.

패션으로 사람의 됨됨이나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순 없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유추는 가능하다. 즉, 본질은 아니지만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 중 하나는 된다. 특히, 정치인에게 옷은 전략이자 수단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캠페인 내내 ‘랄프 로렌’ 슈트를 입었다. 가난한 뉴욕 소년(디자이너 랄프 로렌)의 성공신화가 담긴 브랜드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를 입은 것.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가 입었던 코발트블루 원피스는 통통한 모델을 세워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을 추구하는 크리스천 시리아노가 디자인했다. 뉴욕타임스는 “패션으로 늘 반향을 일으켜 온 미셸이 배제(exclusion)가 아닌 상생(togetherness) 철학이 담긴 시리아노의 옷을 입은 건 우연이 아니다”고 평했다.

박 대통령의 옷에서 힐러리나 미셸처럼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를 읽을 순 없었다. 일부에선 “디자인이 섬세하지 못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검소해 보이기 위한 대통령의 선택”이라고 신뢰한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를 만날 땐 왜 파란색이고 시진핑(習近平)을 만날 땐 왜 황금색이었는지, 수많은 전문가가 정치·외교·문화적 의미를 부여했던 박 대통령의 ‘순방 패션’이 알고 보니 최 씨가 지시한 ‘순실 패션’이었다니 허탈하다.

더욱이 공개된 의상실 풍경을 보면 순실 패션엔 “큰 의미가 없었다”가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려고 그런 기사들을 썼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박 대통령의 옷을 둘러싸고 항간에 떠도는 주술적인 의미에 대해선, 그저 사실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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