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어느 시절을 막론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먹는 일(食事)’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하지만 ‘맛집 탐방’ ‘먹방’ ‘쿡방’ 등으로 다뤄지는 요즘의 식문화를 살펴보면 ‘먹는 일’에 대한 정의가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식재료의 조리법뿐만 아니라 손질법, 보관법 등이 효율적인 소화와 흡수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어졌다. 가령 한식 요리의 기본이 되는 간장, 된장 등의 장류는 콩을 발효해 만든 것으로 효소가 풍부해 여러 식재료와 배합하면 소화를 용이하게 만든다. 이에 반해 요즘은 미각(味覺)만을 유독 강조하는 추세다. 음식이 맛이 좋아야 먹기도 좋은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지나친 맛 내기는 오히려 독이다. 미각은 반복되는 식습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데, 만약 짠맛이나 단맛과 같은 강한 맛만을 탐닉하게 되면 식재료 본연의 맛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자극적인 맛을 찾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식습관이 지속되면 미각이 둔해지고 비위가 상해 자칫 만성적인 소화불량과 각종 대사증후군과 관련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먹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제대로 음식을 챙겨 먹기 힘들며 항상 속이 더부룩하고 트림을 많이 하는 등 소화와 관련된 고충이 있다면 ‘무’를 가까이하는 게 좋다. 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식의 소화 흡수를 돕는 용도로 다양하게 배합된 천연물이다. 특히 전분질을 분해하는 아밀라아제가 풍부해 각종 면이나 밥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섭취하는 음식의 소화 흡수를 돕는 데 탁월하다. 실제로 냉면, 메밀국수 등 차갑게 먹는 면류의 경우 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무를 배합해서 먹는다.

무의 한자명은 ‘나복(蘿)’으로 무를 주재료로 한 김치 중의 하나인 ‘나박김치’의 이름 또한 여기에서 유래했다. 나박김치나 동치미같이 찬 음식뿐 아니라 쇠고기뭇국과 같이 무가 들어간 따뜻한 육수를 마셔보면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무는 답답한 속을 잘 풀어준다. 무는 생용(生用)하는 것이 소화를 돕는 데 더 적합하지만 오랫동안 보관하기 어렵기 때문에 약용할 경우 무의 씨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무씨는 ‘나복자(蘿子)’라고 하며 배가 팽팽하게 불러오는 창만 증상을 해소하는 요약으로 쓰인다. 맛이 매워 정체된 기운을 잘 풀어주면서 단맛으로 기운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며, 성질이 평하여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화불량에 두루 쓰인다. 또한 무보다 하기(下氣)시키는 작용이 강해 소화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대소변이 잘 나오게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나복자는 날것으로 복용하면 특유의 향으로 체한 것을 토하게 하기 때문에 차로 마실 경우엔 약한 불에 볶은 뒤 가루 내어 약성을 다소 완만하게 하는 것이 좋다. 물 2ℓ에 나복자 가루 20g을 넣고 물이 끓으면 약불로 줄여 30분 정도 더 달여서 마시면 된다. 특유의 매운맛이 거북하다면 엿기름이나 꿀, 설탕 등을 넣고 끓이면 편하게 마실 수 있다. 만약 면류를 과식해 체한 경우는 맥아 신곡(누룩)을, 육류를 과식한 경우는 산사를 배합하면 소화에 더욱 도움이 된다. 백개자(겨자), 소자(깨)와 배합하면 기침을 멈추고 가래를 삭이는 효능이 강화된다. 또한 옛말에 ‘지황을 심은 밭에 무를 심으면 지황이 모두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로 맞지 않으니 생지황, 숙지황 등과는 함께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강진우 차서레시피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