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집 마당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정유라 씨 학사 관련 자료 등이 ‘널부러져’ 있었….

버스 기사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사람의 진면목은 다급한 상황이나 위기의 순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요. 첫째 인용문은 전 국민을 분노와 자괴감 사이를 오가게 한 최순실 씨 모녀가 도피 직전까지 머물던 독일 집 마당의 모습입니다. 취재진의 추적을 감지하고 서둘러 빠져나가느라 아이 신발 등 갖가지 흔적을 남긴 거지요. 이때 ‘널부러져’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지거나 흩어지다’는 뜻의 ‘널브러지다’의 활용형 ‘널브러져’로 고쳐야 합니다.

둘째 인용문은 승객 30명을 구한 중국의 여성 버스 기사에 관한 내용인데요. 운전 도중 갑자기 의식이 희미해지는 걸 느낀 버스 기사가 기절하기 불과 몇십 초 전 승객을 모두 내리게 했다고 합니다. 영문을 모른 채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은 곧이어 운전석에서 의식을 잃고 널브러진 버스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지요. 기절 직전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은 버스 기사의 정신력이 승객들의 목숨을 구한 미담입니다. 여기서도 ‘널부러져’는 ‘널브러져’로 고쳐야 하는데요. 이때의 ‘널브러지다’는 몸에 힘이 빠져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축 늘어진다는 뜻입니다. 한 동사가 전혀 다른 뜻을 가진 사례지요.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들의 도피를 돕기는커녕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하고는 자기 몸만 빠져나온 선장 때문에 온 국민이 분노한 게 오래지 않은데 이번엔 비선 실세로 국정을 좌지우지한 것도 모자라 광범위한 부정과 불법을 저지른 여인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꼭꼭 숨었다가 검찰에 제 발로 찾아가서는 ‘모르쇠’로 일관해 더더욱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청와대를 들락거리며 대통령과 교우했으면서도 드러난 행적은 시정잡배와 다를 게 없습니다. 중국 버스 기사의 투철한 직업 정신은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김정희 교열팀장 kjh21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