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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범 논설위원

해외에서 구글 지도로 음식점을 찾다 보면 ‘글루텐 프리(Gluten Free)’라는 선택 항목이 뜬다. 생경하지만 해외에선 일반화됐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서도 ‘글루텐 없는 식단’의 식당이 생기기 시작했다. 글루텐은 밀의 주요 성분으로 반죽·늘이기·펴기 등을 가능케 하는 점성 물질이지만 비만·피부병·설사·변비·탈모 등의 원인이며 과민성대장증후군과 만성 소화장애를 일으키는 셀리악병의 원인이라고 한다. 밀의 시조인 야생 아인콘은 염색체가 14개였으나 오랜 교잡을 거치면서 42개로 늘었다. 병충해와 어떤 기후에도 잘 견디게 만들면서 글루텐도 강화됐다. 밀 2만5000종 가운데 지배적 품종은 유전학자 노먼 볼로그가 개발한 ‘왜소종 밀(소노라 64호)’이다.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린 녹색혁명 공로로 노벨평화상(1970년)까지 받았다. “사회정의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전 인류를 위한 공평한 먹을거리”라며 수상 소감을 밝혔지만 그의 사회정의는 ‘밀의 역습’을 받고 있다.

‘글루텐 프리’는 결국 밀가루 음식, 즉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다는 의미다. 탄수화물은 몸속에서 포도당으로 변하고 인슐린이 다시 지방으로 바꿔 주로 복부 또는 내장에 저장시켜 비만을 유발한다. 인체 에너지원은 당질과 지방이어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저장된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 작동돼 다이어트가 된다. 최근 유행해 버터와 삼겹살 품귀 현상까지 빚은 ‘고지방·저탄수화물’ 식단도 같은 원리다. 미국 심장병예방학 박사 윌리엄 데이비스, 일본에서 당질제한식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의사 에베 고지(江部康二) 등이 대표적 반(反)탄수화물론자들이다. 섭취를 끊으면 암, 심장·뇌혈관·정신질환, 폐렴, 피부병, 식곤증까지 개선되며, 임상 실험으로 증명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만은 지방이 아닌 탄수화물이 주범이라는 주장이 정설이 돼 건강 상식이 깨지고 있다. 볼로그가 살아 있다면 “탄수화물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뭐라고 할까.

음식 방송(일명 먹방)이 홍수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을 합쳐 프로그램이 총 15개를 훌쩍 넘는다. ‘한국인의 밥상’ ‘집밥 백선생2’ ‘삼시 세끼’ 등등. 하지만 맛에만 집착할 뿐 건강한 식(食)문화는 없는 것 같다. 먹기 위해 살자는 건지, 살기 위해 먹자는 건지 철학 부재다. 시청률에만 신경 쓰는 ‘건강 프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