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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요즘 주요 대기업 임원마다 입에 달고 다니는 단어가 있다. ‘변화와 혁신’이다. 재계 총수들이 전례 없이 비장한 용어까지 구사하며 연일 강도 높은 혁신을 주문하고 있는 데 따른 일종의 ‘세뇌 효과’라는 느낌이 든다. 경영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증폭되고 있으니 총수들도 걱정이 태산 같을 터이다.

최근 혁신 발언과 관련, 단연 돋보이는 총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그는 6월 말 확대경영회의에서 “지금이 전쟁상태라면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변하지 않으면 서든 데스(sudden death·돌연사)할 수 있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비상 상황)이니 워룸(war room·작전실) 설치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최근 창립 기념사에도 혁신의 통절(痛切)함이 배어 있다. 그는 “조직의 노화를 부추기는 관료주의, 적당주의, 무사안일주의를 배척해야 한다”고 했다. 승진 때면 한 달 안식 휴가를 주는 제도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비교적 조용한 그룹으로 알려진 LS의 구자열 회장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기업의 모든 활동이 컴퓨터와 연계해 디지털화한다는 의미)’을 화두로 끄집어내며 ‘기술혁신’ 선봉에 섰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초입에 들어선 지금의 변화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전부 폐기해야 할 정도로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그 해법이 변화와 혁신이다. 혁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침(一鍼)으로는 ‘경영학의 그루’ 피터 드러커의 명언(名言)만 한 게 없다. 그는 “혁신에 의해 가치가 주어지기 전까지 모든 식물은 잡초이고, 모든 광석은 돌덩어리일 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부를 창출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혁신 활동이야말로 기업의 존재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도 “지구상에 살아남은 종(種)은 가장 강하거나 지적인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이라고 설파했다.

혁신은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라는 말이 있다. 재계 총수들은 오래전부터 신년 초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변화와 혁신을 노래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혁신이 크게 미흡하다며 혁신을 외친다. 지금까지 ‘행동이 아닌 말로만 혁신’이었다는 얘기다. 근간의 재계 총수발(發) 혁신 바람이 무풍인지, 미풍인지, 태풍인지 이번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