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으로부터 순식간에 800억 원 가까이 거둔 미르·K스포츠재단의 의혹에 대해 “난무하는 비방과 폭로성 발언”(9월 22일)이라고 언급한 지 한 달 만인 20일 다시 입장을 밝혔다. 비록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발언의 전반적 취지는 그간 제기된 의혹들은 물론 국민의 상식과도 거리가 있다. 이런 괴리에 대해서는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우선, 박 대통령은 두 재단 설립에 대해 “의미 있는 사업이며 재계가 순수한 참여 의지를 가지고 주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간 드러난 정황들과 비교하면 거리가 있다. 포스코 이사이기도 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대기업 발목을 비틀어서 굴러가는 것 같다”고 했다. 또 포스코가 출연을 결정한 과정에 대해 “이사회에서 부결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부결도 못 했다”고 했다. “내라고 해서 냈다”는 대기업 임원의 국회 증언 등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백 번 양보해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돈을 걷겠다는 인식부터 잘못이다.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와 기관이 얼마든지 있으며 예산도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나름의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2월, 7월 두 차례 재계와 협의하고 부탁을 했다”고 밝혔다. 자칫 ‘대통령의 직접 지시’라고 읽힐 수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1일 “모금을 지시한 사람이 박 대통령이라는 커밍 아웃이며, 최순실 게이트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는 뜻”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자발적이라면 이렇게 불투명하게 군사 작전하듯 진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란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단번에 현판식까지 끝낸 것도 ‘재계 주도’란 설명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틀 만에 재단 설립 서류 절차를 끝냈으며, 참석하지도 않은 회사 관계자의 내용이 서류에 기재되기도 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더 이상의 의혹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감독기관이 감사를 철저히 하고 모든 것이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지도·감독해 주기 바란다”며 재단의 존속 방침을 밝힌 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측도 두 재단의 해체와 새 재단 설립을 거론했다. 탄생이 불투명한 재단을 고집하면 ‘제2 일해재단’ 얘기를 자초할 수 있다. 이미 두 재단에 최 씨 영향력이 드러나면서 ‘보이지 않는 권력의 손’이 없이 가능했겠느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 박 대통령 언급은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처럼 비친다. 검찰은 어떤 성역도 없이 수사해 전모를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800억 원을 끌어 모은 진상부터 밝히는 것이 수사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