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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사회부장

인공지능(AI)의 일자리 침범 논란이 급기야 ‘AI 판사’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을 비롯한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대거 방한을 계기로 해서다. 대법원이 주관한 국제법률심포지엄에서 AI와 사법 문제가 논의되기는 처음이기도 하지만, 던져진 화두가 미래의 모습에 대한 상상력을 끝도 없이 자극한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AI 판사는 인간 판사를 대체할 수 없다”, 참석자들의 잠정적인 공감대는 형성됐어도 깊이 들어갈수록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이들의 공감대는 오히려 칸트의 정언명령과 같은 기대 탓이 커 보인다. AI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돼서? 그보다는 해선 안 된다는 도덕적 당위성에 가깝다. 실제 “AI가 판사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로만 얌폴스키 미국 루이빌대 사이버보안연구소장의 강변이 더 솔직하다. 그렇다면, AI가 무서워서? 인간의 최고급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에? 19세기 1차 산업혁명 때 제기돼 2차·3차 산업혁명까지 변형된 형태로 이어졌던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이 매번 기우로 귀결됐다는 점을 이들도 모르지 않으니 이 역시 논외다.

이들의 고민은 보다 근본적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를 가장 우선한 판결의 중요성”이 AI 판사 불가론의 근거다. 오렌 에치오니 미국 앨런인공지능연구소장은 “사건 자체에 대한 공감과 연민” “사회적 합의”를 추가로 들었다. 사실 알고리즘을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고, 빅데이터를 구겨 넣어도 AI가 구사할 수 없는 최고의 능력은 ‘종합적 직관력’이다. 인간이 최종 판단을 내릴 때 모든 상황을 고려해 내리는 딱 그것이 AI에는 없다는 뜻이다. 인간·가족·사회·도덕·감정·생명존중 등이 한꺼번에 응축된 통찰력을 말한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리걸테크(legaltech)’의 위협이다. AI 법률정보 서비스나 벤처기업을 말한다. 주디카타(Judicata)·렉스 마키나(Lex Machina)가 대표주자다. 렉스 마키나 공동설립자인 조슈아 워커 박사 역시 “AI 판사는 없다”면서도 2008년부터 일반에 판결예측시스템을 서비스하고 있으니, 최소 판사의 ‘수석급 참모’ 역할을 AI에 맡긴 셈이다. 특정 분야에선 예측과 실제 판결의 일치 확률이 95%까지 올라간 터에 분야 확대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더구나 1심·2심·3심 판결이 뒤집히기를 반복하고, 비슷한 사건의 판결이 제각각이라면 가능성은 더 커진다. 최악은 인간성 문제다. AI가 침범할 수 없다고, 침범해선 안 된다고 했던 인간성 측면에서 판사가 인정받지 못했을 경우다. 생명과 인신구속, 형량을 돈을 주고 사는 게 만연한 풍토라면, 정언명령은 뒤집힐 수도 있다. “기계적으로라도 좋으니 제발 공평무사한 판결을 AI 판사가 내려달라!” 며 오히려 환영할지 모른다. 전관예우에다 온갖 법조비리로 수십 년째 시끄러운 나라에서는 AI 판사가 가장 먼저 등장할 수도 있겠다 싶다. 검찰도 예외가 아니다. 검찰 비리가 계속 터지고, 돈·권력·연고에 따라 구속 여부가 달라지는 세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 검사 대신 기계적 형평성의 AI 검사를 선호할지 모를 일이다. jup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