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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위배 결론 안나
의원들 공문으로 우회할 듯
2년전 野의원 716건 발송해

다음 주부터 본격화할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공문 폭탄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으로 국회의원들의 ‘쪽지 예산’(국회의원의 개인적인 민원 예산)이 금지되면서 국회의원들이 합법적 수단인 예산 당국에 대한 대규모 공문 발송을 통해 예산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국회의원들의 쪽지 예산이 금지된다고 해도 온갖 편법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기재부 예산실이 ‘긴장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국회의장도 야당 출신이고, 2012년 5월 개정된 국회법(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내년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을 지정하고,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은 어느 해보다 ‘험로(險路)’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불법 가능성이 있는 쪽지 예산 대신 기재부 예산실에 대규모 공문을 발송하는 편법을 쓸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19대 국회에서 야당의 A 의원은 2014년 6월부터 8월까지 기재부에 무려 716건에 달하는 국회의장 명의의 서면 질의서를 보내 업무를 사실상 마비시킨 적이 있다. 자신의 지역구 예산과 관련,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담당 공무원이 난색을 표하자 무더기 서면 질의서를 보내 해당 과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국회의장 직인을 찍어 공문을 보낼 경우 기재부도 공문 하나하나에 기재부 장관의 직인뿐만 아니라, 행정자치부에 가서 대통령 직인까지 찍어서 답변서를 보내야 한다”며 “국회의원이 국회의장 명의로 공문을 보낼 경우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직인까지 찍어서 답변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장 다음 주부터 내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본격화할 예정이지만, 정부는 아직도 쪽지 예산이 청탁금지법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지난 14일 열린 청탁금지법 관계장관회의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쪽지 예산의 위법 여부를 질의했지만,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쪽지 예산이 국회의원들이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방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아니냐”며 “당장 다음 주면 내년 예산안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아직 쪽지 예산의 위법 여부조차 확정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조해동 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