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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범 논설위원

최근 미국에서 급격히 고조된 북핵 선제타격론이 급기야 ‘김정은 제거론’으로까지 비화했다. 그것도 미 당국자 공개 발언(on the record)으로 나왔다.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2일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이 핵 공격을 감행할 만큼 진전된 능력을 보유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곧바로 죽는다. 김정은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핵 개발은 플랜A가 아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여러 복잡한 함의가 숨어 있지만, ‘김정은의 즉각적 죽음’을 거론한 것만으로도 미 정부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물론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공식적으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결코 말처럼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1957년 미국 국무부 부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서독에 대한 미국의 핵 방위 보장을 약속하기 위해 콘라트 아데나워 초대 총리를 만났다. 미국이 소련과 냉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핵전쟁이 벌어지면 뉴욕과 시카고가 소련으로부터 보복 공격을 받을 텐데 뮌헨과 함부르크를 핵무기로 지킬 수 있겠느냐는 불신이 팽배했었다. 아데나워 총리의 예상 밖 반응에 허가 찔린 것은 오히려 덜레스 부장관이었다. “제발 핵폭탄으로 서독 도시를 방어하지 말아 달라.” 핵전쟁이 발발하면 독일 국가와 국민이 파멸한다는 우려였다.

전쟁을 원하는 한국 대통령은 없다. 북은 이를 철저히 역이용했다. 전면전을 치를 능력이 없지만 ‘전면전이 발발하면 북도 패망하겠지만 한·미·일도 엄청난 피해를 본다’는 인식을 심기 위해 끊임없이 도발했다. 이를 ‘이웃집 거실에서 권총 자살하기’(폴 브래큰)라고도 한다. 북의 5차 핵실험 이후 등장한 북핵 선제타격론(preemptive strike)은 이런 ‘담력 싸움’의 고리를 끊는다는 의미다. ‘한반도 게임’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선제타격이 위력적이어서가 아니다. ‘전쟁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인식의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전제가 깔리면 북 심리전은 그 근거가 사라져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2006년 7월 4일. 북은 7기의 미사일을 종류별로 한꺼번에 쐈다. 왜 하필 미국 독립기념일이며 7발이었을까. 초점은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 발사에 있었다. 디스커버리호 발사를 미국의 미사일 공격으로 가정하고 대응한 것이다. 7기의 미사일은 당시 추정하던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과 일치한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한국과 일본이 즉각적으로 공격을 당할 것이란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 폭침 사건과 그 8개월 후에 벌어진 연평도 포격도 ‘도발을 위한 도발’만은 아니었다. 장소가 공해상이고 대상이 군이어서 도발에 대한 남측의 군사적 대응 수위를 탐색한 것이었다. 연평도에 포탄 170여 발을 쏘아 민간인 등 네 명이 숨지게 한 것 역시 정전협정 이후 남측 영토 첫 포격이라는 심각성으로 전쟁 의지를 떠본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을 부인하고 인명피해가 적은 지역을 도발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전면전에 대한 부담을 북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선제타격론은 대북 군사력 사용을 금기시하던 ‘심리적 감옥’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 작전계획(OPLAN)이 없는 ‘개념작전’(CONPLAN)에 불과하다. 실행력이 관건이다. 북한이 보복 공격을 꿈도 못 꿀 정도로 처절한 타격을 입혀야 하며, 전면전 확대 가능성도 차단해야 한다. ‘핵 공격 징후가 뚜렷할 경우’라는 전제도 충족돼야 하고 중국의 대응 등 돌발변수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위험하고 어렵다. 일각에서는 실행 불가능하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선제타격론이 오히려 독이 될 소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미 양국이 처음으로 북핵의 군사적 대응 방안에 대한 의견을 모아가는데 흐지부지된다면 더 이상 다른 수단을 찾기 힘들게 된다. 북핵은 통제 불능의 불가침이 되고 ‘권총 자살 협박’ 또한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한·미와 일본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실행 가능하고 완벽한 구체안을 짜야 할 때다.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배치론은 타당성과 별개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본토 수준의 방어를 약속했는데 한·미 동맹 포기로 들릴 것이다. 북핵 선제타격론 등장으로 한반도는 ‘위험 관리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