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노승 KGA 경기위원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사옥 6승 테라스에서 자신의 저서 ‘더 골퍼’를 펼치며 최근 타계한 아널드 파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박노승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

박노승(62) 대한골프협회(KGA) 경기위원의 골프 스토리는 독특하다. 아들을 골프선수로 키우기 위해 멀쩡한 직장(삼성전자)을 그만두고 골프채를 잡았고,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나 석사 학위를 획득했다. 남은 인생을 골프계에 ‘올인’하는 방법을 찾다 최고의 골프 레퍼리(심판) 자격시험을 통과했고, 최근엔 골프전문 서적을 두 권이나 펴냈다. 지난 6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사옥을 찾은 박 위원은 “이 모든 게 골프가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가능했다”면서 “여력이 닿는 한 골프에 계속 몸담고 싶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1985년부터 삼성전자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재원을 지냈다. 아들(남규)이 3세 때였다. 한국에서 골프를 늘 동경했던 박 위원은 독일에 부임하자 가장 먼저 골프채를 구입했다. 그는 초보 시절 골프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1985년부터 골프잡지를 30년 이상 구독했다. 아들을 골프선수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빠가 골프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들이 8세가 되자 직접 스윙을 가르쳤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아들과 함께하는 게 주요 일과였다. 주재원 생활 5년을 마친 1991년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처지가 됐다. 박 위원은 “한국에서는 아들을 골프선수로 키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삼성전자에 사표를 던지고 독일에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전자제품 판매회사를 창업한 박 위원은 때마침 동유럽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대박’을 터트려 짧은 시간에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을 지도할 코치를 찾기 위해 미국의 유명 골프아카데미를 섭렵했다. 아들은 이 덕인지 독일에서도 알아주는 골프유망주가 됐다.

독일 아마추어 골퍼들은 분데스리가를 거쳐야 한다. 1∼3부 리그에 8개 팀씩 있는데 박 위원의 아들은 1부 정상팀인 프랑크푸르트 골프클럽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연습장, 골프의류와 용품, 심지어 대회 참가 경비까지 모두 지원받았다. 박 위원의 아들은 전 세계랭킹 1위 마르틴 카이머(33)가 뒤셀도르프 소속의 아마추어였던 시절 그를 자주 꺾었다. 독일에서 고교를 졸업한 아들은 미국대학리그(NCAA) 상위권이던 리하이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멤버가 되리라고 믿었던 아들은 그러나 골프를 그만두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꺼냈다. 아들은 4학년 때 박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느닷없이 “실력의 한계를 느끼기에 프로가 될 자신이 없다”고 ‘통보’했다. 박 위원은 “처음엔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져 무척 섭섭했지만 아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며 “시간이 지나 아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아들은 스위스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들이 골프선수를 포기하자 박 위원은 골프 관련 일을 하며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2009년 말 25년여의 독일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골프학교를 찾았지만 깊이보다는 속성으로 가르치는 것 같아 포기하고 55세가 넘어 대학원에 입학해 2013년 골프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PGA 클래스A에 도전, 실기평가인 PAT에서 하루 36홀을 7오버파 이내로 쳐 통과했다. 이어 어플랜티스(견습생) 자격을 획득했다. 그는 2013년 ‘더 멀리 더 가까이’를 출간했고, 지난 6월 두 번째 저서 ‘더 골퍼’를 펴냈다.

박 위원은 골프 심판으로 눈을 돌렸다. 2012년 미국골프협회(USGA) 룰 테스트와 2014년 KGA 레퍼리 스쿨, 그리고 2015년 가장 어렵다는 영국왕실골프협회(R&A)의 룰 레벨 3 테스트를 통과해 국제심판 자격을 획득했다. 아들의 캐디백을 멘 10년 이상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건국대 대학원 골프산업학과에서 골프철학(3학점)을 강의하는 박 위원은 KGA가 주관하는 연간 22개 대회 중 12∼15개 대회의 경기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4월부터 10월 말까지가 시즌이다 보니 거의 매주 출전하는 셈”이라고 귀띔했다. 경기위원의 일과는 오전 4시 30분 골프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핀 위치 등 코스를 세팅하고 경기하기에 앞서 코스 제반 사항을 점검하며, 경기가 시작되면 담당 홀에서 대기하다 선수들의 룰 위반 여부를 판단한다. 박 위원은 “대회에 참가하면 교통비, 식비 등 실비 정도를 보장받는다”며 “돈보다는 재미가 있고 또 ‘봉사직’이기에 소명감을 갖고 즐겁게 일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마스터스 등 4대 메이저대회를 관람했다는 박 위원은 “소위 명문 대회일수록 갤러리의 안전과 편의 제공을 가장 우선으로 고려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독일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클럽대항전에 출전해 우승한 경력도 지니고 있다. 2007년 독일 헤센주 챔피언대회에서 프랑크푸르트 골프클럽 소속으로 아들과 함께 출전, 매치 경기(포섬) 결승전까지 진출해 승리했다. 박 위원의 베스트 스코어는 이븐파 72타. 프랑크푸르트 골프클럽 챔피언 티(블루티)에서 기록했다. 지금은 80타를 넘기지 않으면 ‘생큐’다. 박 위원은 장타는 아니지만 쇼트게임만큼은 여전히 날카롭다고 자부한다. 한때 드라이버로 210m 정도 보내기도 했지만 요즘엔 200m를 담보하기가 어렵단다.

박 위원은 “골퍼들은 굿 히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굿 골퍼가 되는 게 더욱 중요하다”며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룰에 따라 플레이를 펼치는 게 진정한 골프의 자세”라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