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영진 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가 13일 서울 중구 성공회 서울성당 뒤편 한옥 앞에서 요즘의 한·일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한·일 간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한·일 관계가 여전히 어려운 상태지만, 북핵 위협 등에 대응하기 위해선 한·일 간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기억

김영진 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가 처음 평양을 방문한 것은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1년 후인 1973년 9월이었다. 당시 북한과 미국은 수교가 안 됐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방북 후 미 학술지에 방북기를 게재한다’는 조건으로 미국의 허가를 받아, 준기자 자격으로 3주간 평양에 머물렀다.

한국 전직 대통령들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가 방북 후 미 워싱턴으로 돌아오니 주미 한국대사관엔 한 차례 소동이 난 뒤였다. 김 교수가 평양에 간 것을 몰랐던 대사관 인사들이 정부의 질책을 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정부 인사들의 부탁을 받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첫 만남부터 박 전 대통령과 3∼4시간 동안 독대했다는 그는 “만났던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지적이고 논리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공산권 국가의 아시아 정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내가 말하는 것을 모두 메모했다가 하나하나 질문, 반박하곤 했다”고 말했다. 또 “경제 개발, 발전 문제에 굉장한 관심이 있었다”며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해서도 자문을 구했었다”고 덧붙였다.

기억에 남는 박 전 대통령의 또 다른 모습도 있다. 한 번은 김 교수가 한겨울에 서울을 방문했는데 집 없는 젊은 여성이 지하도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김 교수는 대통령에게 “한국 경제가 발전했다더니, 저런 사람을 수용할 장소도 없습니까”라고 건의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서 내용을 메모하더니, 다음 날 바로 그 문제에 대한 답변을 줬다”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조지워싱턴대에 초청해 방미, 강연을 한 인연으로 잘 알게 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쓴소리를 한 적도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의 열광이 뜨거웠을 때 그는 남북관계에 대한 회의적 전망을 담은 칼럼을 한 신문에 실었다. 그는 “주미 한국대사관 인사들이 칼럼 내용이 너무 회의적이라고 항의하길래 ‘1년 후에 판단하자’고 했다”며 “1년 후 만났더니 내 전망이 맞았다고 인정하더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땐 대통령의 반미 성향에 대해 우려하는 칼럼을 쓴 적도 있다. 국내와 일본 등 일간지에 이 같은 내용의 칼럼을 실었을 때 “아무리 반미 성향의 인물이라도 대통령이 되면 미국과 잘 지내려 하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안팎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대통령과 국무장관 등이 쓴 회고록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의 반미성향과 발언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며 “결국 내 전망이 들어맞았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