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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범 논설위원

240년 전통의 미국 정치사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기여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asshole theory’일 것이다. 원래 asshole은 항문을 뜻하지만 비속어다. 굳이 번역하자면 ‘꼴통론’ ‘또라이론’ ‘철면피론’쯤 된다. 이런 이론은 캘리포니아대(어바인) 애런 제임스(철학) 교수가 대표적인 연구 학자다. 그는 ‘asshole’은 대인관계에서 철저히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처신하며, 그럴 만한 권한과 자격이 있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의 불만은 철저히 무시하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규정했다. 트럼프는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 관행을 무시하고, 자기 편한 대로 행동하며, 누가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하면 분개하는 행동을 보인다. 특히 탈세는 물론 온갖 성 추문이 연일 새롭게 폭로돼 가히 ‘부도덕의 종합판’이라고 할 지경이다. 그래도 그의 지지는 견고하다. 그래서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됐다.

사실 그는 홧김에 대선 후보가 되다시피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되지도 않을 대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비꼬자 경선에 뛰어들어 놀랍게도 성공했다. “나를 비웃던 사람들이 요즘 별로 안 웃는다”며 후보가 된 뒤 비아냥댔다. 만약 한국에서 어떤 대선 후보가 TV 토론에 나와 “내 손이 작다는데, 손이 작으면 그것(성기)도 작을 거라는 뜻이겠지만 전혀 문제없다”라거나, 자기 딸을 보고 “내가 유부남이나 아버지만 아니었으면(성관계를 암시)…”이라고 말했다면 어찌 될까.

하지만 “법안 폐기를 지켜보느니 관행을 모조리 위반하더라도 통과시켜야 한다” “내 진로를 방해하면 모두 날려 버린다” “예의와 절제는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꼼수에 불과하다”는 막말도 했다. 현실 정치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이 혹할 만하다. 이런 막말은 일단 흥미를 끈다. 그 흥미는 기대로, 다시 믿음과 지지로 이어진다. 역겨워하면서도 끌린다는 것이다. 폭언을 해도 지지자들은 용서하며 관용을 베푼다. 트럼프만이 기존 체제를 부술 것이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 미 정치 체제에 대한 불신과 한계에 대한 방증이다. 한국에도 ‘asshole’이 많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년 대선이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인기영합적인 ‘트럼프 신드롬’과 ‘한국판 트럼프’들이 점차 먹힐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깨어 있는 유권자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