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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북한 군인과 주민 여러분!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脫北)을 직접 그리고 공개적으로 권유한 것이다. 이번 ‘탈북 유도’ 발언은 대통령이 김정은 정권과 그 아래 간부 및 주민을 분리한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제는 북한의 레짐체인지(regime change)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더 확실하게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 당국의 신경질적인 반응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북한 로동신문은 3일 “탈북을 선동하는 미친 나발질도 서슴지 않았다”며 막말과 욕설을 섞어 맹비난을 퍼부었다.

또, 이번 박 대통령 발언은 미국의 ‘김정은 고사(枯死) 작전’과도 궤를 함께하고 있다. 미국은 실질적 군사행동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북한 압박에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3월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 제2270호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것은 물론, 북한 고려항공에 직접 조치를 취할 뜻까지 비치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통해 북한을 국제금융망에서 퇴출시키는 식의 초강경 법안을 미 의회가 발의했다. 심지어 이란의 핵 봉쇄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던 외교 봉쇄 카드까지 꺼냈다. 대니얼 러셀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 9월 28일 북한의 외교적 활동을 제지하도록 전 세계 미국 공관장들에게 지시했다고 밝힌 것이다. 심지어 중국 압박용 ‘한·일 핵무장론’까지 거론됐다. ‘전략적 인내’ 정책을 내리고, 대신 외교·경제·정보·인권 등 ‘대북 4종 세트’를 앞세웠다.

한·미 양국 정부의 대북 압박 공조는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남(南)으로 오라’ 정책을 현실화하는 일인데, 걸림돌이 적지 않다. 우선, 레짐체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발언”이라면서 “그런 상황을 우리가 먼저 만들어서도 안 되고,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른 상당수 야권 인사도 같은 생각이다. 둘째, 실질적 준비도 허술해 보인다. 지난 9월 4일 북한인권법이 시행되기 시작했으나, 아직 북한인권재단도 구성하지 못했다. 야당 추천 인사 배분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다. 국론이 분열돼 있는 한, 대통령 선언은 공허하고 유사시 대량 탈북 사태를 감당할 역량이 있는지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 발언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이젠 실질적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첫째,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 국민 100%를 아우르진 못한다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둘째, 탈북자 정책을 ‘난민 관리형’에서 ‘통일 역량 준비형’으로 바꿔야 한다.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진 탈북자를 묶어내고 이를 주체로 삼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런 모습이 북에까지 전달돼야 북한 엘리트층의 적극적 탈북이 이뤄질 것이다. 셋째, 대량 탈북, 더 나아가 북한 붕괴 사태에 대한 심리적·물질적 준비가 필요하다. 이제는 구체적 실천 방안과 계획이 제시될 때가 됐다. 이런 조건이 갖춰질 때, 북한 주민의 호응도 활성화할 것이다.

sjh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