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만권 연우심리연구소 대표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연구소 사옥 상담실에서 드라이버를 들고 장타 비결을 설명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김만권 연우심리연구소 대표

심리학 박사인 김만권(56) 연우심리연구소 대표는 “골프만큼 멘털이 지배하는 게임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골프를 시작한 지 이제 6년에 불과하지만 3년 만에 ‘싱글 핸디캐퍼’가 됐고, 요즘에도 70대 초반 스코어를 유지하는 실력파다.

김 대표를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연우심리연구소 사옥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골프에서 멘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마추어보다 프로들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서로 기량 차가 큰 아마추어보다는 기량이 엇비슷한 프로 선수들은 멘털이 성적의 80∼90%를 좌우할 정도라는 것이다. 한때 골프여제에 올랐던 대만의 청야니가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모습도 기량보다 멘털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사례라고.

김 대표는 골퍼들의 ‘스코어 성향’을 심리학으로 접근했다. “100대를 치면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 90대는 참아야 할 것은 참아야 하는데 대부분 욕심이나 성급함으로 망치는 사람, 그리고 80대는 자기를 통제하고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고 정의를 내렸다.

김 대표는 연세대 대학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심리학자로서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잠재적 환자들의 심리검사 상담을 맡아왔던 것. 그러다 1997년 연세대 출신 5명이 모여 ‘연우(延友) 심리연구소’를 차렸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동료들이 뿔뿔이 흩어져 이젠 김 대표 혼자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명이던 연구원도 10명으로 줄었지만, 자체 사옥을 보유할 만큼 재정도 탄탄한 편이라고. 그동안 외국에서 개발한 심리검사 자료를 그대로 들여와 로열티를 주고 사용해 오다, 2002년부터 자체개발한 심리검사 키트를 통해 학교나 기업 등을 대상으로 활발한 심리 컨설팅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정신과 치료는 마음의 병이 들었기에 약물치료가 필요하지만 가벼운 증상이나 예방 차원에서의 심리치료는 갈등이나 문제점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서 그동안 기업의 직원과 가족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 꾸준한 심리상담을 받을 경우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 사례가 많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골프입문은 2010년, 51세 때였다. 김 대표에게 의대 교수들과 친구들이 골프를 배우라고 했다. 하지만 연구소 일에 매달려서 밤낮없이 일하는 재미에 푹 빠진 탓에 실제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로 “한 달 뒤 필드에 나갈 터이니 연습해서 오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그때야 골프채를 샀다. 연습장만 끊었을 뿐 제대로 된 레슨 한번 받지 않고 독학으로 배웠다. 물론 싱글 핸디캐퍼였던 친구가 많은 도움을 줬다.

웬만한 운동은 힘든 줄 몰랐던 김 대표에게 골프는 가장 힘들고 피곤한 운동이었다. 잘 되다가도 그 다음 날 무너지는 게 골프였고, 그날 컨디션에 따라, 누구와 치느냐에 따라 변수가 너무 많았기에 골프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처음엔 생각대로 안 되니 오기가 생겼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래서 독한마음을 먹고 연구원들에게 “싱글(핸디캐퍼가) 되기 전에는 연구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런 비장함 덕분에 연습에 더 전념할 수 있었고, 골프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참으로 많았다. 상담 때는 잘 안 보이던 상대의 성격도 골프장에서는 바로 보였다.

김 대표는 2주 전 전인지가 에비앙챔피언십에서 ‘메이저 최저타’로 우승할 수 있었던 심리학적 배경을 사례로 들었다. 마지막 홀에서 파를 해야만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전인지에게 캐디는 ‘파를 하면 저녁을 사겠다’며 제안했다. “내가 이 홀 파를 하면 메이저 신기록이 될 것”이란 압박감을 느끼고 있던 전인지에게 캐디가 사소한 ‘저녁 내기’로 편한 마음을 만들어 준 역할을 한 것이라는 설명. 캐디의 기지가 빛나는 부분이었다는 것. 김 대표는 또 전인지가 4일 내내 선두로 나서 우승했던 것도 리우올림픽에서 박인비처럼 마음의 평정심을 갖고 뛰어난 집중력을 유지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약간의 긴장감이나 경쟁심은 수련에 도움이 된다는 김 대표는 골프를 칠 때마다 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라고 한다. 나름의 ‘멘털 훈련법’이라는 김 대표는 “내기를 통해 압박감을 갖고 골프를 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다준다”면서 “내기를 하면서 늘 따는 사람과 늘 잃는 사람은 자기 통제력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3주 전 ‘라이프 베스트’인 1오버파 73타를 쳤다. 경기 양평의 더 스타 휴 골프장에서다. 2년 전 우연히 이 골프장에 초청돼 라운드를 했던 김 대표는 골프장까지 가는 길이 멀어 처음엔 실망했다. 하지만 막상 골프장에 도착해 코스에 머무는 동안 배려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코스 레이아웃에 반해 다른 골프장 회원권을 처분하고 이곳 회원권으로 갈아탔다. 김 대표는 생전 처음 ‘머리를 얹은’ 경기 여주의 블루헤런골프장에서 3년 전 76타를 쳐 첫 ‘싱글 패’를 받았다. 예전엔 드라이버 비거리를 250m까지 보내기도 해지만 무리가 오는 느낌이 들어 조절하면서도 요즘에도 220m 정도를 보낸다. 아직 홀인원은 없지만 5차례 이글 중 4차례를 더 스타 휴 골프장에서 기록했다.

김 대표는 골프의 매력을 경기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까지 챙겨주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김 대표는 평소 룰에는 엄격한 편. 하지만 동창 골프 모임에서만큼은 자신의 제안으로 모든 멤버가 ‘약간의 터치’ 플레이를 허용하도록 일탈을 한다. 그래서 이 모임에 나온 멤버는 스코어가 평소보다 좋게 나오고, 최고의 샷도 만들어 내며 자신감을 느끼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앞으로 종합병원처럼 ‘종합 심리상담센터’를 만들고 싶다는 김 대표는 자신의 성향상 “아마 일찌감치 배웠다면 티칭 프로 자격증이라도 땄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골프심리치료센터’를 만들어 필요한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