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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청춘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싱그럽고 열정적이면서 낭만적이고 순수했던 청춘의 빛이 시나브로 참담하고 암울한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인생이 버겁고 힘든 청춘은 이제 도전과 저항 대신 안정과 순응을 내면화하면서 생존을 걱정한다. 하지만 현실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청춘은 청춘이어야 한다. 절망하지 않고 문제적 현실을 바꿔 나갈 수 있는 힘을 되찾도록 해줘야 한다.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맞서 조선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세자와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남장내시의 성장드라마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을 주목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조선 제23대 국왕인 순조의 맏아들로 19세 때부터 병약한 아버지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한 효명세자 이영(박보검)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인물이지만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도 남다른 업적을 남긴 효명세자를 호출해 당대의 정치적 갈등과 권력 쟁투를 긴장감 넘치게 다룬다. ‘홍경래의 난’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나 ‘정약용’이라는 실존 인물이 등장해서 사실처럼 인식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허구의 세계일 뿐이니 실제 역사로 착각하면 안 된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외척 세력의 눈을 속이고 새로운 조선을 준비하는 세자 이영과, 연애 비법에 대한 책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다가 동궁전 내관이 된 남장여자 홍라온(김유정)의 사랑이다. 세자의 남색 스캔들로 비화된 이들의 사랑은 신분 격차와 상관없이 달콤하면서 낭만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영과 홍라온의 사랑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음모와 계략을 꾸미는 세력 때문에 시련을 겪는다는 점이다. 그저 그렇고 그런 궁중 로맨스가 아닌 것이다.

세자는 ‘좋은 나라’에 대한 고민이 깊은 인물이다. 대비의 수렴청정과 외척의 등쌀 때문에 신경쇠약증이 걸린 아버지 왕(김승수)을 대신해 기득권 세력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의 상대는 조선을 쥐락펴락하는 세도가 김씨 세력의 수장인 영의정 김헌(천호진)이다.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조선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정약용(안내상)에게 도움을 받지만 결코 쉽지 않다.

동궁전 내관 홍삼놈이 실은 남장을 한 여자 홍라온임을 알게 된 세자는 자신의 사랑에 충실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적 힘을 강화하기 위해 국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게다가 홍라온이 반란의 주동자였던 홍경래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위기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자 이영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세상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눈을 가진 임금이 되어야 한다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백성이 행복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고뇌하는 세자 이영의 도전과 저항 정신은 지금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자가 만들고자 하는, “아이가 아이답게 여인이 여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서는 청춘도 암울한 잿빛이 아니라 싱그럽고 푸르게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매력의 세자 이영과 남장내시 홍라온의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사랑에 담긴 청춘의 도전과 저항 의지가 소중한 까닭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