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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산업부 차장

국가 재정(財政)을 다루는 기자로서, 최근 나온 뉴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을 꼽으라면 단연 모병제(募兵制) 도입을 다룬 기사를 들고 싶다. 1950∼1953년 한국전쟁이라는 모진 시련을 겪은 한국 사회에서 모병제란,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로망’이다.

우리나라가 국민개병주의(國民皆兵主義)를 유지하지 않아도 안전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됐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국민개병주의 혹은 징병제(徵兵制)란, 유복하고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굳이 존재하지 않아도 무방한 제도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학자들은 대개 한 번쯤 자신이 쓴 책 맨 앞에 아들 또는 딸을 거명하며 ‘그들이 좀 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며…’라는 헌사(獻辭)를 쓰곤 한다. 프랑스의 국제정치학자 레이몽 아롱의 책 제목처럼 ‘전쟁과 평화’를 다루는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입장에서 자식을 키우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나 보다. 우리나라가 후손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평화로운 나라가 된다면, 그 첫 번째 징표가 바로 징병제 폐지일 것이다.

그러나 여권의 대권 주자 중 한 명이라는 남경필 경기지사가 모병제라는 말을 꺼냈을 때, 내게 처음으로 든 생각은 “그 돈은 어디서 나올까?”하는 의문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모병제의 장점을 몰라서 안 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남 지사는 월 200만 원 이상 봉급을 주는, 약 30만 명 규모의 모병제를 시행할 경우, 1년에 약 4조 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남 지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머릿속으로 20년이면 80조 원, 30년이면 120조 원이라는 숫자를 계산하고 있었다. 남북통일이 언제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매해 지출해야 할 것이다. 남 지사는 모병제를 하면 ‘젊은 층 일자리’도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군인에게 월 200만 원 이상의 봉급을 줘서 9급 공무원 수준으로 대우하면, 좋은 일자리가 그만큼 많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모병제는 ‘청년층 실업 대책’이기도 하다는 얘긴데, 요즘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젊은 층이 듣기 좋아할 만한 말인 것 같기는 하다. 모병제와 함께 최근에 들은 말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아동(兒童) 수당’이다. 아동 수당을 왜 도입하자고 하는지는 안 들어도 대강 짐작이 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니 일정 연령 이하의 자녀를 둔 가정에 매월 일정액의 돈을 주자는 얘기다. 참 멋진 생각이기는 한데, 방안에 따라서 한 해에 적어도 13조∼15조 원, 많으면 28조 원가량의 돈이 든다고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문제가 많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돈이 든다.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쓰겠다’는 공약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내년 대선까지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은 ‘제2의 모병제’ ‘제2의 아동 수당’과 직면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다. 당신에게 돈을 주겠다는 사람은, 뽑은 뒤에는 가장 빨리 당신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