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본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미바라의 항구에서 홀로 묵묵히 유속을 견디고 있는 세토즈메자키 등대.

‘규슈올레’ 17번째 코스 미나미시마바라

한국과 가장 가까운 일본 땅 규슈(九州)에는 ‘규슈올레’가 있다. 규슈올레는 제주올레가 일본에 ‘제주올레’ 브랜드를 수출해 조성된 보도여행길. 제주올레가 코스 조성에 대해 자문, 심사하고 제주올레 브랜드와 간세·리본·화살표 등 표식을 제공해 만들어졌다. 규슈올레는 규슈 전역에 모두 17개 코스가 조성됐다.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17번째 코스가 일본 규슈의 나가사키(長崎)현 남쪽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시에 있다.

# 고향에 온 듯한 고즈넉한 시골마을

일본 후쿠오카(福岡)공항에서 차로 3시간 이상 달려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나가사키 시마바라(島原) 반도, 그중에서도 가장 남쪽 바다와 인접한 곳이 미나미시마바라다.

규슈올레 17번째 코스를 체험하기 위해 먼저 향해야 할 곳은 구치노쓰(口之津) 항구다. 이 항구는 시마바라 반도의 안쪽에 위치한 항구로 약 450년 전 남만선이라 불리는 서양의 무역선이 드나들어 번영과 함께 일본 가톨릭 포교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으로, 규슈올레 17번 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구치노쓰 항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올레 코스의 종착지인 ‘구치노쓰 역사 민속 자료관’에 들러 보는 것도 좋겠다.

이미지 크게보기 마을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소면. 현재까지도 300개 이상의 소면집이 남아있다.

# 규슈올레길에서 만난 푸근한 풍경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는 총 거리 10.3㎞에 3시간30분짜리 코스로 난이도는 중(中)이다. 산을 오르는 구간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초보자가 걷기에 무리가 없을 만한 완만한 코스다. 구치노쓰 항구에서 출발해 교쿠호지 절(寺)∼야쿠모 신사 ∼세토즈메자키 등대∼용나무 군락지∼구치노쓰 등대를 거쳐 구치노쓰 민속자료관까지 이어진다. 다른 규슈올레 코스와 달리 농토와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일하다.

두 시간 남짓 걸으면 세토즈메자키 등대가 보이는 해안도로에 접어든다. 제주와 비슷한 현무암과 돌담을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것 말고도 미나미시마바라와 제주는 많은 부분이 닮았다.



# 종교 탄압과 순교의 비극이 지나간 땅

미나미시마바라는 과거 종교 탄압의 흔적이 남아있는 순교자의 땅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 이곳은 크리스천이었던 지방의 번주(藩主) 다이묘(大名)의 선교 아래 주민 모두가 가톨릭 신자로 신학교 ‘세미나리요’가 건립되는 등 기독교 번영의 땅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권이 여러 번 교체되는 과정에서 금교령이 내려졌고 탄압에 저항한 신자들에 의해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났으며 이후 총 3만7000명이 순교해 지금껏 순교자의 땅으로 남아있다. 아리마 크리스천 유산 기념관에 그 역사와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아리마 크리스천 유산 기념관을 둘러봤다면 종교 탄압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하라성터를 보는 것도 추천한다. 하라성터는 선교사와 신자 3만7000명 이상이 살던 터로 지금까지도 순교자의 유골과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미나미시마바라는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소면으로 유명한 마을로 탈바꿈했다. 탄압과 대학살에 따른 크리스천 신자들의 몰살로 비어 있던 땅에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어와 정착, 생계를 위해 국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미나미시마바라의 소면이 유명해졌다. 지금까지도 마을 곳곳에 300개 이상의 소면집이 남아 있으며 오사카(大阪) 옆 효고(兵庫)현에 이어 일본 전국 면 생산 2위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 야생 돌고래 떼, 화산재해의 자취

시마바라 반도 주변에는 300마리 이상의 야생 돌고래가 살고 있다. 구치노쓰 항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나가 떼로 움직이는 야생 돌고래를 직접 보는 경험은 경이로웠다.

미나미시마바라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는 화산분출에 따른 재해의 자취였다. 1990년 11월 17일, 198년 만에 운젠(雲仙) 지역의 후겐다케(普賢岳)산이 분화했다. 이 영향으로 분화구에 형성되어 있던 용암돔이 붕괴되면서 대규모의 화산 쇄설류가 발생해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수시로 인근 마을을 덮쳤는데 당시 피해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해 놓은 곳이 미즈나시 혼진이다. 지붕만 덩그러니 남은 채로 가옥이 모두 매몰되어 있는 현장의 모습을 보니 당시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나가사키=글·사진 안은진 기자 eun0322@munhwa.com
취재협조=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시, 엔타비여행사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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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기를 비롯해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등 저비용항공사들이 인천, 부산, 대구 등에서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로 가는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후쿠오카공항에서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까지는 차로 3시간 30분쯤 걸린다. 저비용항공사 에어 서울이 오는 10월 18일부터 인천∼나가사키(長崎) 구간을 신규 취항한다. 나가사키 공항에서 시마테쓰 버스, 현영버스를 이용해 이사하야(諫早)까지 이동(약 40분 소요)한 뒤 시마테스 버스로 1시간 정도 더 들어가면 시마바라에 도착한다. 미나미시마바라는 온천으로도 이름났다. 올레 코스 체험 후 숙소로 돌아와 온천에 몸을 담그고 여행의 피로를 풀며 마무리하는 것도 좋다. 하라성 온천 마사고 (0957-85-3155) 구치노쓰 온천 시라하마 비치 호텔(0957-86-3030) 운젠 미카도 호텔(0957-72-5420) 등이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