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핀란드는 지역 주민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확보한 정책 신뢰성을 바탕으로 전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공사를 시작했다. 오는 2020년쯤 운영에 들어갈 핀란드 에우라요키시 올킬루오토섬에 있는 방폐물 지하연구소(URL) 온칼로(ONKALO·동굴)공사 모습.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③ 선진국 ‘방폐장 건설계획’ 어떻게 <끝>

- 핀란드
19년 걸쳐 全국토 단계적 조사
2002년 세계 첫 시설부지확보
예정부지 지하 450m에 연구소
안전 검증 뒤 10년간 실증연구

- 스웨덴
1976년부터 부지선정 연구
1990년 대국민캠페인 시작
2009년 포스마크 최종 선정
지역경제 지원하며 신뢰 쌓아

북유럽의 핀란드와 스웨덴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 안의 국회 처리를 추진 중인 우리나라가 눈여겨봐야 할 국가들이다. 원자력발전소를 운영 중인 이들 두 나라는 성공적으로 고준위방폐장 건설 계획을 수립했다. 핀란드는 올해부터 공사에 돌입했고, 스웨덴은 2011년 건설허가를 신청, 2020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 두 나라의 공통점은 부지선정에 있어 단계적인 접근을 했고, 방폐장 건립 관련 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민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를 허용했으며, 이를 통해 규제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됐다는 데 있다.

26일 산업통상자원부 및 원자력 관련 기관 등에 따르면 핀란드는 지난해 11월 고준위방폐장 건설 허가를 취득했다. 1983년부터 부지선정에 착수한 핀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올킬루오토(Olkiluoto)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확보했다. 이후 2012년 건설허가를 신청해 작년에 허가를 취득했다. 본격적인 운영은 2020년쯤 시작될 전망이다.

핀란드 고준위방폐장 건설 정책이 이처럼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절차를 법률로 규정했고, 국민과 소통했기 때문이다. 국민과의 소통은 절차적 엄밀성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는 작업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1983년 ‘방사성폐기물 관리 분야에서 연구, 조사 및 계획 수립 시 준수할 목표에 관한 정부의 원칙 결정’을 통해 사용 후핵연료 처분이라는 기본 방침을 확고히 했다. 같은 해 시작된 부지조사는 4단계로 나뉘어 2001년에 최종 후보지 1곳을 선정하기에 이른다. 장기간에 걸쳐 전 국토를 대상으로 단계적 조사를 진행했고, 투명한 정보 공개로 주민수용성 확보에 주력했다. 전담 기관인 포시바(POSIVA)를 세워 소통의 역할도 부여했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지역 주민의 강력한 신뢰가 있기도 했지만 포시바는 지자체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건설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했다. 예정 용지에 지하연구소(URL)를 설치하고 1년간 안전성 검증도 했다. ‘온칼로(ONKALO·동굴)’라고 불리는 지하연구소는 지하 450m 깊이에 지어졌으며 2012년부터 약 10년간 실증연구를 통해서 영구처분시설 건설허가 자료를 확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온칼로가 자리잡은 핀란드 에우라요키시 올킬루오토섬 모습.

이와 함께 고준위방폐장 건립 지역 지원도 합리적 기준에 따라 마련됐다. 포시바 본사의 방폐장 지역으로의 이전, 해당 지자체 전입 때 재산세 면제, 다양한 복지시설 운영 지원, 주택 임대 제공 등이다.

2012년 한정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작성한 ‘핀란드 원전산업 관련 국민수용성 사례 연구’ 보고서는 “핀란드는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다는 정부·국민·원자력 사업체의 인식공유, 정책 기조의 안정성, 과정을 중요시하는 점진적 의사결정 방식, 물질보상보다는 상호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갈등해결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중·저준위 방폐장을 운영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측도 “핀란드의 사례는 앞으로 국내 고준위방폐장 정책에 참고할 부분이 많다”며 “부지선정 절차나 영구처분시설의 안전성 연구, 규제기준 및 제도 정비 등은 본받을 만하다”고 전했다.

스웨덴은 본격적인 건설 공사에 들어가진 않았다. 하지만 고준위방폐물 처리와 관련한 정책 시도는 핀란드보다 먼저 시작했다. 스웨덴 정부는 1976년부터 부지선정 연구에 착수했다. 2009년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로 포스마크(Forsmark) 지역이 선정됐으며, 2011년 건설허가를 신청해 2020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웨덴도 진행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1970년대부터 부지선정 조사 및 작업을 진행해 1980년 중반 정부가 후보 지역을 선정, 착공하려 했으나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원점으로 돌린 경험이 있다. 이후 스웨덴 정부는 본격적으로 주민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1990년대 들어 스웨덴 방폐장 사업자인 SKB는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고준위 방폐장에 대한 수용성 확보에 나섰다. 직접 주민과 만나며 설득작업을 시도하는 한편, 문화·체육 행사 후원을 포함해 지역경제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주민들의 신뢰를 쌓았다.

부지선정도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단계적 접근법을 활용해 ‘전국규모 지질조사→8개 지역 타당성조사→부지조사(오스카샴·포스마크)→상세조사’ 순으로 이뤄졌다. 2002년부터 시작된 오스카샴과 포스마크 지역에 대한 부지조사는 2009년에 이르러서야 포스마크로 결정되며 마무리된다. 국민들의 신뢰가 두터워 SKB는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가 난 후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포스마크 지역의 고준위방폐장 건설 허가 신청을 했다.

물론 이 같은 국민들의 신뢰는 그냥 얻어진 건 아니다. 소통을 통해 주민들의 바람을 정책화했다. 지자체에 부지조사 거부권을 부여했으며 실증시험 등 장기플랜을 제시했다.

또 스웨덴 내 규제기관과 별도로 원자력기구(NEA)의 안전성 평가에서도 검토해야 하는 강력한 규제가 따랐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경제적 지원에서도 선정지역뿐만 아니라 탈락지역에도 지원금이 배분됐다(총액 3000억 원, 선정지역 25%·복수 탈락지역 75%). 또 SKB 본사 기능 이전 및 연구소·인프라 투자 그리고 일자리 창출 등이 인센티브로 제시됐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박사는 “핀란드, 스웨덴은 특이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은 나라”라며 “긴 호흡으로 고준위방폐물 처리 정책을 추진해 오면서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