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사 부부에 사기친 뒤 살해
警, 4명 추가 파견해 수사 공조
살인범은 체포된 뒤 자해 시도

16년 전 장의사 부부를 살해하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피의자가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검거됐다.

경찰청은 살인을 저지른 후 필리핀으로 밀항해 도피생활을 하던 강모(47) 씨를 현지에서 붙잡아 국내로 송환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강 씨는 2000년 7월 공범 이모(49) 씨와 짜고 장의사 조모(당시 39세) 씨 부부에게 병원 영안실 운영권을 따주겠다고 속여 계약금과 보증금 명목으로 1억1000만 원을 가로챘다. 하지만 강 씨와 이 씨는 조 씨 부부가 병원장과 정식 계약을 요구하자 사기행각이 들통 날 것을 우려해 같은 해 11월 이들 부부를 경기 가평군의 한 야산으로 유인한 뒤 살해했다.

이 씨는 범행 직후 붙잡혀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강 씨는 필리핀으로 달아났다. 강 씨는 2001년 초 세부 지역으로 이동해 가명을 사용하며 도피생활을 해 왔다.

경찰 수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치안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 많은 필리핀에서 강 씨의 소재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초 경찰이 한국인 대상 범죄가 빈발하는 필리핀에 ‘코리안데스크(현지 경찰로 구성된 한국인 사건 전담 부서)’ 파견 담당관 4명을 추가로 투입하면서 강 씨의 꼬리가 밟혔다. 지난 4월 세부 지역에 파견된 코리안데스크 담당관 심성원 경감은 도착 직후부터 현지 교민들을 두루 만나며 국외 도피 사범에 관한 첩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심 경감이 경찰청에서 받은 도피 사범 명단에는 강 씨도 포함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심 경감은 “이상한 사람이 돌아다니는데 왠지 중범죄인 같다”는 말을 들었고, 추가 탐문 결과 강 씨가 가명으로 세부에 숨어 지내고 있음을 알아냈다.

심 경감은 필리핀 이민청 도피 사범 추적팀 등과 합동 작전을 펼쳐 8월 5일 세부의 한 콘도에서 강 씨를 검거했다. 강 씨는 검거 당시 “내가 저지른 죗값을 받겠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으나 이내 자해를 시도하는 등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필리핀 5개 지역에서 총 6명의 한국 경찰관이 활동 중”이라며 “앞으로도 필리핀 이민청 및 경찰청과 유기적인 공조수사 체제를 유지해 한국인 관련 범죄 해결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