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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사용후 핵연료 관리법’ 왜 필요한가

2003년 7월, 정부가 전북 부안군 위도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설치계획을 발표했다.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면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 및 방사성폐기물의 누적으로 방폐장 건립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는 방폐장 건립에 찬성하는 일부 여론을 등에 업고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부안지역 주민의 반응은 격렬했다.

설치 발표가 나자 부안군민은 곧장 방폐장 건립 반대운동에 나섰다. 주민 소요사태의 발생은 물론 감정이 격해진 일부 시위참여 군민은 정부 안에 찬성한 군수를 폭행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의 등교거부 등의 형태로 정부 정책에 반대했다. 결국, 시위 진압에 투입된 전경 등과 충돌하기에 이른다.

당시 부안 핵폐기장 반대 시위는 180여 회에 이르렀으며 폭력시위 등으로 인해 부안군 역사상 최대의 사법처리자를 양산했다. 시위진압에 투입된 경찰 중 200명이 넘는 인원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부안 지역에 폐기장 건립 철회 결정을 내렸다.

‘부안사태’는 방폐장 건립에 투명한 절차와 민주적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이 교훈으로 정부는 방폐물을 고준위와 중·저준위로 나눠 보관키로 하고 방폐장 건설 전 주민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고 설치에 따른 보상 계획 등도 수립하는 등의 절차를 만들었다.

이런 절차를 통해 정부는 2015년 경북 경주지역에 중·저준위 방폐장을 준공하고, 이 시설에 원전에서 발생한 옷가지, 장갑 등 중·저준위 방폐물을 저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물은 여전히 국내 24개 원전에 고스란히 임시보관 중이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산업부는 20대 첫 정기국회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을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난 12일과 19일 발생한 경주 지역 지진으로 인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저장은 더욱 어려운 상태다. 주민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사람들로부터 영구격리가 가능한 고준위 방폐물 저장시설 건립의 필요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2009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근거를 마련한 후,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출범됐다.

공론화위원회는 올해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역할을 종료했다. 그 기본계획을 토대로 고준위 방폐물 관리절차법 정부 안이 만들어졌다. 중·저준위 방폐물보다 더 까다롭고 어려운 과제인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 방폐물 정책은 지난 1983년부터 역대 여러 정부에서 9차례에 걸쳐 추진됐으나 도중에 무산됐다. 그러나 그 과정은 사회적 갈등을 풀어가는 교훈을 얻는 공론화 과정이었다.

고준위방폐물 처리절차법의 제정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부지선정 실행기구의 주요기능과 구성·운영, 부지선정 절차와 내용, 관리시설 건설·운영 등에 관한 내용을 국회 입법을 통해 법률로 규정했다. 방폐물 처리와 방폐장 건립 절차를 법제화해 정부의 책임성과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한 것이다. 과거의 법률적 근거 없이 추진된 방폐장 건립 정책은 정부의 잦은 내용 변경으로 인해 국민의 불신을 샀다. 5단계 부지선정절차가 마무리되는 데만 최소 12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부지선정절차를 법제화해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경주시 양북면에 위치한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도 방폐물유치지역법 시행령에 근거해 부지선정위원회 운영과 주민의사확인(주민투표)을 진행해 마련됐다. 미국·독일·일본 등도 방폐장 부지 선정절차를 법률로 정했다. 특정부지를 예단하지 않고 원점에서 관리위원회가 과학적 조사와 주민의사확인을 통해 부지선정을 추진할 수 있도록 법제화돼 절차의 신뢰도를 높인 것이다.

세 번째는 원전 지역 사용후핵연료 반출 및 관리시설 유치지역 지원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관리절차법이 없으면 고준위 방폐물(사용후핵연료)은 현재의 원전 내 저장시설에 보관하는 상태가 계속 연장돼 반출하는 시기를 정하기 어렵게 된다. 또 시설을 유치한 지역에 대한 보상도 법률로 규정할 경우 정치적 개입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세금 낭비를 막아 합리적인 수준에서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보상책을 마련할 수 있다.

고준위방폐물 처리절차법에 대해 일부 반핵단체들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원칙(투명성·민주성·회귀성)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 ‘저장주체에 대한 언급이 없어 관리사업자와 발생자 모두 저장행위를 할 수 있으며, 원전 내 저장에 대한 규제조항 없다’ ‘관리절차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타법에 우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반핵단체들이 말하는 절차법 상의 투명성이나 민주성 등의 원칙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법률 명기가 불필요하고 절차법의 문제가 있다면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데 대안없이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원전 내 저장에 대한 규제조항 문제의 경우 절차법에 (규제를)담게 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역할 등과 상충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고준위방폐물 처리절차법의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게 원전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김숭녕(원자력공학) 조선대 교수는 “고리 원전1호기를 가동한 지 40년이 됐지만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법적 근거조차 없었다”며 “원전 가동국으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고준위 방폐장 설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설치 근거가 되는 처리절차법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논의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