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애국주의 마지노선과 北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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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 베이징 특파원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이후 추석 연휴까지 중국에서 보내며 황당하고 착잡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한 미지근한 중국의 태도가 하나의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인들이 ‘애국주의’의 탈을 쓰고 공개적으로 현재와 과거의 대한민국을 모욕하는 걸 목도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오전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중국 CCTV와 신화통신 등 주요 뉴스는 속보로 ‘인공 지진’ 소식을 다루며 이어서 핵실험 소식을 전했다. 중국 정부도 당일 비교적 신속하게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가 안보에 비상이 걸린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느긋했다. 포털 사이트 및 관영 매체의 톱기사를 비롯한 주요 뉴스는 다음 날인 교사절(스승의 날)을 맞이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모교방문 활동으로 채워졌다. 온라인과 모바일에서는 주말이 지나면서 오히려 북한의 핵실험보다 삼성 갤럭시노트7 관련 소식이 더 화제였다. 삼성이 타격을 입은 사이 중국 브랜드인 화웨이(華爲)가 시장점유율을 높일 것이라며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만 리콜하지 않는 것은 중국 소비자에 대한 차별’이라며 ‘궐기하라’고 흥분하던 일각의 네티즌들은 중국 제품 부분 리콜 방침 발표 이후 ‘나는 삼성과 화웨이 두 휴대전화를 사겠다. 신변에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삼성을 던지고 화웨이를 가슴에 품고 뛰겠다’는 조롱 문구를 퍼 날랐다.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관심이 많은 한 중국 언론인이 마침 핵실험 당일 오후 늦게 기자에게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톡)으로 한 영상을 보내왔다. 마침 북핵과 중국의 분위기와 관련해 토론하고 싶던 차에 연락이 와 반갑게 열어봤지만 놀랍게도 그가 던진 화두는 북핵이 아니었다. 그러나 북핵 이상의 심리적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동영상은 신나는 배경음악에 백발이 성성한 중국 노인들이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관광버스에 타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국 여성 가이드가 두 손을 모으고 중국어로 상냥하게 인사를 하며 “서울에 대해 소개하겠다”고 하자 백발의 관광객들이 말을 끊으며 “우리 서울 와 봤어”라고 말하며 반전이 시작된다.

어리둥절해 하는 가이드가 여권에 입국 기록이 없다고 하자 그들은 “여권 없이 왔었어”라고 외친다. 그러고는 “우린 홍기(紅旗)를 들고 서울에 들어왔어. 그땐 서울이 아닌 한청(漢城)이었지”라며 “아가씨도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거야. ‘나의 전쟁’!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이라고 노인들이 입을 모아 구호를 외치며 끝난다. 6·25전쟁을 다룬 ‘나의 전쟁(我的戰爭)’이라는 영화 홍보 영상으로 주요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 왔다. 기자를 포함해 당시 나라를 지키다가 순국한 호국 열사들의 아들딸과 손자·손녀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대한민국에 여행 와서는 그들의 면전에서 “너희 할아버지를 죽이러 왔었다”고 웃으며 당당히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잔인함에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애국’의 이름에도 마지노선이 있어야 한다”는 제목으로 한 역사 교사가 웨이보(微博)에 “애국주의보다 더 앞선 가치가 있나? 있다. 그것은 인류애(사랑)”라는 글을 썼고 네티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이 홍보영상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중국이 올봄 처음으로 6·25전쟁을 다룬 드라마를 방영토록 한 이후 중추절을 맞아 이번에는 처음으로 ‘상업영화’를 상영한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적 색채를 띤 영화가 중앙정부의 지침 없이 만들어졌을 리 만무하다. 최근 공무원들에게 단체로 이 영화를 보라는 중앙 정부의 지침이 내려졌다고 한다. 중국은 북핵보다 미·중 대결에 관심이 있다. 내적 모순을 외부적으로 돌리기에 애국주의 정서만큼 이용하기 좋은 것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움과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상식은 기대하기 어려운 걸까. go@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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