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수성구에 10㎏짜리 쌀 2000포
선친 뜻이어 ‘사랑 나눔’ 실천

얼굴 없는 천사로 유명했던 대구 수성구 ‘키다리 아저씨’의 60·70대 자녀들이 대(代)를 이어 추석 밑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수성구는 지난 6일 키다리 아저씨의 자녀가 10㎏짜리 쌀 2000포(4600만 원 상당)를 트럭(사진)에 실어 전해왔다고 8일 밝혔다. 수성구 관계자는 “자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쌀을 전한다’고 말한 뒤 홀연히 떠났다”고 말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지난 2014년 5월,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수성구는 전달받은 쌀을 각 주민센터, 지역 복지관, 공설경로당, 사회복지시설 등에 배부했다.

키다리 아저씨의 쌀 기부는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됐다. 키다리 아저씨는 신분을 알리기를 사양해 수성구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는 당시 “저소득 주민·보훈 가족, 이북5도민 등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이 넉넉한 추석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만 남긴 채 쌀을 기부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해 쌀 500포(20㎏)를 시작으로 매년 10㎏짜리 2000포(4300만 원 상당)를 트럭으로 싣고 와 수성구민운동장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그가 별세하기 전 기부한 쌀은 2만여 포(4억5000만 원 상당)에 해당한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않아 키다리 아저씨의 아름다운 선행은 더욱 빛났다. 키다리 아저씨는 평안남도가 고향으로 6·25전쟁 때 부산에 머물다 대구에 정착한 뒤 양복지 도매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5년쯤 전 아내와 사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중단될 줄 알았던 쌀 기부는 그해 곧바로 이어졌다. 올해로 70세인 딸과 68세인 아들이 부친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와 자녀들이 그동안 기부한 쌀은 10㎏짜리 2만6000포(6억 원 상당)에 이른다. 수성구 관계자는 “돌아가신 부친이 걸어온 소중한 길을 잇고 있는 자녀들은 우리 사회의 본보기”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한 큰 기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대구 =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