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지방경찰청 도시고속순찰대 소속 암행순찰차가 지난 8월 22일 서울내부순환도로 홍지문터널 앞에서 자동차전용도로 교통법규 위반 단속 시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개월간 5곳 10대 시범운행후
고속·차전용로 22대 공식투입

실제로 사망자수 62%나 줄어
“함정단속” 비판여론 크게 완화

1만5956건중 차로위반 최다
난폭·보복운전도 80건 적발

쏘나타 단속차色 5개로 늘려
美 등 OECD 20개국 시행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함정 단속 아니냐’라는 인식이 강해 암행순찰차 제도 도입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교통사고에 따른 피해가 워낙 심각해 국민들도 제도 도입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룬 것 같습니다.”

7일 경찰청 관계자의 기대섞인 자평이다. ‘고속도로의 암행어사’로 불리는 암행순찰차 제도.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뒤 6개월간의 시범운행 기간을 마치고 지난 5일부터 전국 고속도로에 투입됐다. 본격적인 운행에 들어간 셈이다. 암행순찰차는 평소에는 경찰 마크 등만 부착한 채 일반 차량처럼 운행하다가

교통 법규를 어기는 차량을 발견하면 경광등과 사이렌 등으로 경찰 차량임을 드러내고 단속에 나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미국을 비롯한 20여 개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행해왔던 제도다. 일명 암행순찰차를 비롯한 ‘비노출 단속’이다. 특히 미국은 사복 차림의 경찰관이 일반 차량으로 교통 단속을 시행하는 것은 물론 범죄 용의자 추적도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함정 단속’이라는 반대 여론에 부딪혀 번번이 제도 도입이 무산됐다. 경찰이 반대를 무릅쓰고 도입을 강행한 데는 난폭운전 및 보복운전, 갓길주행 등이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게 힘이 됐다. 경찰은 올해 3월 전격적으로 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경찰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경부고속도로에 암행순찰차 2대를 배치해 1단계 시범운행을 진행했다. 이어 2단계로 7월부터 8월까지 경부고속도로 외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에 8대를 추가 배치해 모두 10대를 운행했다.

암행순찰차 제도 도입에 따른 시민 반응은 예상보다 호의적이었다.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암행순찰차 시범운행 전인 올해 1월에는 제도 도입에 대한 찬성 의견이 전체 응답자의 42.3%에 불과했지만, 운행 후인 5월에는 54.5%로 나타났다. 12.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반대 의견은 같은 기간 35.4%에서 22.8%로 12.6%포인트 감소했다.

국민 인식이 이처럼 크게 개선된 배경은 시범운행 기간 중 암행순찰차가 교통사고 예방에 크게 이바지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제 시범운행 기간(3∼8월)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전년 동기 555건 대비 57건(10.3%) 감소한 498건을 기록했다. 또 사망자 수도 16명에서 6명으로 62.5%나 감소했다.

암행순찰차가 교통사고 예방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자 경찰은 지난 5일 ‘암행순찰차 전국 확대 시행 발대식’을 갖고 기존 10대 외에 12대의 차량을 추가로 투입했다. 이에 따라 암행순찰차는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동부간선도로, 북부간선도로, 내부순환로 등 서울 시내 자동차전용도로에 1대, 전국 주요 고속도로에 21대 등 전국에 모두 22대가 투입돼 운행 중이다.

시범운행 기간 중 암행순찰차 단속 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정차로 및 버스전용차로 위반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올해 3월 초 암행순찰차를 도입한 이후 지난달 말까지 총 1만5956건의 교통법규 위반을 적발했다. 종류별로는 ‘지정차로 위반’이 9218건(57.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버스전용차로 위반’ 3755건(23.5%), ‘휴대전화 사용’ 514건(3.2%), ‘갓길 통행’ 420건(2.6%), ‘안전운전 불이행’ 289건(1.8%), ‘난폭·보복운전’ 80건(0.5%) 등의 순이었다.

이런 가운데 주요 고속도로에서 암행순찰차가 맹활약하면서 차량 제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우리보다 앞서 암행순찰차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은 여러 종류의 차량을 암행순찰차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암행순찰차로 투입된 22대 모두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를 구매해 운영 중이다. 차량 색상은 검은색과 은색, 흰색, 진회색, 진청색 등 총 5가지다. 도입 초기에는 검은색 한 종류였지만 운전자들 사이에서 ‘검은색 쏘나타를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돌자 단속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색상을 다양화했다.

현재 전국의 112 순찰차 4002대 중 2395대(59.8%)는 1600㏄급이지만 암행순찰차는 주 활동 무대가 고속도로인 만큼 일반 순찰차보다 높은 2000㏄급으로 구성했다. 최근 주요 고속도로에서 배기량이 높은 고급 스포츠카 등을 이용한 불법 레이싱이 빈발하고 있는 만큼 더 높은 제원의 차량을 투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에 대한 경찰의 설명이 재밌다. “무리하게 쫓을 경우 2차 사고의 위험이 있는 만큼 직접 단속보다는 캠코더와 블랙박스 등 영상장비를 이용한 채증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차 성능이 일반 차를 압도할 경우 2차 사고 위험도 높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을 가로막아 단속하는 경우보다 위반 차량이 지칠 때까지 쫓아가 ‘안전하게’ 붙잡는 게 낫다는 얘기다.

경찰은 앞으로 제도가 정착하면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일반도로까지 암행순찰차 투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