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영권 ㈜대화알미늄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사옥 집무실에서 짬을 내 퍼팅 연습을 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이영권 ㈜대화알미늄 대표이사

이영권(67) ㈜대화알미늄 대표이사는 후덕한 외모와는 달리 골프장에서만큼은 ‘까칠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대표는 일단 모르는 사람과 골프는 하지 않는 편이다. 이 대표에게 비즈니스 골프는 1년에 한 차례 될까, 이제껏 손에 꼽을 정도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 대표는 골프회원권 10여 개를 갖고 있으며, 친구들과 자주 어울린다.

이 대표를 지난달 26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사옥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 대표의 회사는 세종시에 본사를 두고 있기에 찾아오는 손님도 별로 없어 이곳을 서울 사옥으로 택했다고 한다. 이 대표가 20년째 경영하는 대화알미늄은 건물 창 섀시나 방화문 등 철과 비철금속 제품을 생산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북한학 박사’이자 동국대 초빙교수로 강의도 맡고 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부영그룹에서 20여 년 동안 몸담아 오다 1989년 그룹 총괄전무이사를 끝으로 독립해 지금의 회사를 차렸다. 이 대표는 최근 베일에 싸여있는 김정은 권력의 퍼즐을 풀어낸 ‘백두혈통의 미래’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기업을 하면서도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그동안 북한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왔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부영 근무 시절, 마흔이 넘어 골프를 접했다. 테니스를 즐겨 해오던 이 대표는 친구들 성화로 시작한 골프로 인해 테니스를 접었다. 하지만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골프를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이유는 단 하나. 골프로 인해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긴다는 것. 부영그룹은 아이러니하게도 종합 레저기업으로 발돋움하며 현재 국내외에 골프장 108홀을 운영하는 골프장 전문기업이 됐다.

이 대표는 뒤늦게 시작한 골프에 맛을 들인 이상 도저히 끊을 수 없어, 회사 사람들 몰래 골프를 강행했다. 당시 회사 본사가 서울 영등포구에 있을 때였다. 이 대표는 점심시간에 늘 자장면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12시쯤 근처 연습장에 가서 40분 정도 연습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에 가면 연습장 타석은 거의 비어있었다. 당시만 해도 연습장에는 타석마다 볼을 놓아 주는 캐디가 있었지만, 캐디들도 점심시간이라 근무를 꺼렸다. 남의 눈치를 안 봐도 됐고, 같은 레슨비를 내고도 코치로부터 많은 시간 동안 배울 수 있었던 것. 해서 해외 출장을 갔다 오면 코치 선물부터 먼저 챙겨줄 정도였다. 몰래 숨어 하는 골프였지만, 이런 정성 덕에 골프 기량도 부쩍 늘 수 있었다. 하지만 휴일이면 불시에 회사로 출근하는 이 회장 탓에 그의 골프행적이 탄로가 났다. 골프 치기 전 휴일도 없이 출근하던 이 대표의 모습을 볼 수 없자 이 회장에게 월요일마다 추궁(?)당해야 했다.

이 대표는 요즘 83∼85타밖에 치질 못 하지만 한때 ‘언더파’까지 치며 골프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10년 전 경기 광주 곤지암 그린힐골프장에서 친구들 4팀이 모인 자리에서 1언더파 71타를 쳤다. 이 대표는 골프 친지 3년도 안 돼 안정적인 80대를 치더니 5년쯤 되니 줄곧 70대 스코어를 벗어나지 않았다. 가끔 이븐파를 치기도 했지만 ‘언더파’ 벽을 넘지 못하다 처음 기록했던 것. 일행들에게 골프장 밥값을 냈고, 그것도 모자라 뒤풀이까지 하면서 받은 언더파 기념패는 몇 년 후 이사를 하면서 정리하는 짐 속에 섞여 잃어버렸다.

이 대표는 홀인원은 두 차례 기록했다. 2010년 강원 고성의 썬밸리골프장에서 첫 홀인원을 작성했고 이듬해 경기 용인의 아시아나골프장에서 두 번째 행운을 안았다. 동코스 11번 홀(파3)에서 왼쪽 그린 중간 핀이었는데 티샷한 볼이 그린에 떨어지더니 경사를 타고 마치 홀을 찾아가듯 굴러 들어가는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기억했다. 이 대표는 이날도 10번 홀(파5) 출발 직전, 그늘집을 나오며 일행들에게 티잉 그라운드 옆에 있는 ‘여인 조각상’을 가리키며 “2000년에 이글 기념으로 나무 대신 조각상을 기증한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바로 다음 홀에서 홀인원을 작성했던 것.

이 대표는 지금도 갖고 있는 골프회원권이 10여 개나 된다. 모두 10∼20년 전, 주말 부킹이 어려웠던 시절 구입했던 것. 그렇다고 투자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 골프회원권 시세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팔아야 할 타이밍’을 놓쳤고, 이젠 ‘본전 생각’에 아까워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평소에 모르는 사람과 골프장에서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클럽챔피언전에 출전할 기량도 갖췄지만 성격상 모르는 사람과 조 편성해서 몇 시간씩 골프를 치는 것도 꺼려 회원친목 모임조차 나가지 않을 정도로 낯을 많이 가렸다. 골프를 비즈니스로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라운드 파트너 대부분은 가족이나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이다. 친구와 골프를 치려 해도 부킹이 어려워 골프회원권이 필요했던 것. 요즘에야 골프장이 많아져 옛 얘기가 됐지만, 예전엔 골프장에서 부킹을 담보로 횡포가 심했던 시절이 있었다. 호텔을 운영하는 골프장에서는 호텔 숙박을 해야만 부킹을 해줬고, 골프장에서 라운드 후 밥도 먹어야 했을 정도였다. 이 대표는 “골프가 주는 매력은 정직인 것 같다”면서 “평소에는 젠틀하고 정직한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골프를 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비칠 정도로 짧은 시간에 상대를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14년 한양대에서 운영하는 골프 최고경영자(CEO)과정을 다니면서 골프 실력도 실력이지만 지금껏 흘려버렸던 골프 규칙과 에티켓도 많이 배웠다. 함께 골프장을 다녀본 원우들에게 ‘굿 매너’로 소문났고, 원우회장을 맡기도 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