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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 베이징 특파원

올림픽이 끝나자 중국 관영 매체에는 9월 4∼5일 항저우(杭州)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관련해 얼마나 많은 주요 국가 지도자들이 중국과 이 회의를 중시하는지를 강조하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철저한 보안과 순찰을 도는 미녀 군인들의 사진, 전체를 빈 도시로 만들어 청정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방침도 빠지지 않는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까지 거론하며 거친 협박을 일삼던 관영 매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G20을 맞이해 김장수 주중 한국 대사에게 행사 관련 인터뷰를 요청했다. 물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관련 질문은 쏙 뺐다. 베이징(北京) 현지 외교 채널과 군사 채널을 닫고 외면했던 중국 정부는 ‘한·중 우호’를 말하면서 ‘긴밀한 소통’을 강조하는가 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갑자기 대북 규탄 성명에 별다른 반대 없이 동의했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들어 중국 외교는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할 일을 하겠다’는 기조하에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해왔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비롯한 국제기구도 여러 개 만들었다. 미국에는 동등한 대국으로 잘 해보자며 ‘신형대국관계’를 제시했다. 2014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개최, 2015년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 해외 정상 초청에 이어 이번 G20은 시 주석 전반기 마지막 국제 행사 개최 일정이다.

G20을 계기로 시 주석 시대 전반기 외교를 돌아보면 거창하고 창대했던 시작과 달리 결과적으로는 ‘행사’를 ‘번듯하게’ 치른 것 외에 실제로는 낙제점에 가깝다. 중국은 AIIB에 밀려든 회원 신청에 “‘중국의 친구그룹(朋友圈子)’이 이렇게 넓어졌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남중국해 중재재판 당시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시 주석의 거대한 사진을 1면 상단에, 중간에 제호를 넣고 하단에는 세계 지도를 그려 ‘중국을 지지하는 국가’를 붉은색으로, ‘필리핀(미국)을 지지하는 국가’를 푸른색으로 칠해 붉은색이 더 넓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실제 판결 전 중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국가는 아프가니스탄과 감비아, 케냐, 파푸아뉴기니, 토고 등 중앙아시아 일부와 아프리카 지역 10개국에 불과했다. 판결 이후에는 중국 외에는 대만, 파키스탄, 수단, 몬테네그로 등 4개 국가만이 판결 무효를 주장했다.

중국은 서방 국가들과는 안보·경제적 마찰을, 동남아국가들과는 영토적 마찰 등을 빚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강경하게 되풀이하고 협박을 일삼는 ‘힘의 외교’를 밀어붙인 결과 이제는 중국 내부에서조차 ‘친구가 없다’는 자성이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외교적 실패 중 하나는 시 주석 들어 대표적 외교 성과로 꼽혀 온 한국과의 관계 악화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이 한국인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결과 한국 여론은 중국에 등을 돌렸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은 물론, 남쪽에서는 동남아시아국가, 남서부에서는 인도, 동부에서는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스스로 전선을 만들었다.

시 주석이 집권 초반기에 주창한 ‘친(親·친밀)·성(誠·성실)·혜(惠·혜택)·용(容·포용)’이라는 주변국 외교 원칙은 이제 무색하다. 신형대국관계는 미국에 인정받지 못한 채 ‘대답 없는 메아리’로만 울리고 있다. 주변 주요국 중 러시아를 빼면 사방과 마찰을 빚고 있다. 북한의 핵은 포기시키지도 못한 채 주변국의 핵에 대한 방어에는 과도하게 신경질 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재재판소 판결 불복으로 국제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이미지도 덮어썼다. G20을 앞두고 보이는 극단적이고 일시적인 태도의 변화는 상대국의 신뢰를 잃게 한다. 중국 측이 한·중 관계의 과제로 밝히고 있는 ‘신뢰의 문제’는 스스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답이 나올 것이다. 집권 후반기에도 이 같은 흐름이 유지된다면 중국은 국제사회로 뻗어 나가는 게 아니라 러시아와 굳게 손을 잡은 채 함께 갇히는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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