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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망명 사건으로 영국 정보기관 MI6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영화 007시리즈 덕분에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하다. 공식 명칭은 비밀정보국(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이다. 현존하는 정보기관 중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으로 1909년 영국 해군성 산하 군사정보 6국(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6)으로 출발했다. 훗날 외무부 소속으로 변경되면서 명칭도 바뀌었으나, MI6로 더 알려져 있다.

영국 선데이익스프레스에 보도된 태 공사 탈출기는 어느 첩보영화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MI6는 물론 미국 CIA, 심지어 영국 전투기 타이푼과 독일에 위치한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도 나온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하는 점이다. 선데이익스프레스는 타블로이드판 대중지인 데일리익스프레스의 주말판이다. 이 신문은 브렉시트를 옹호하는 등 강경 우익인 영국 독립당(UKIP)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첩보 세계엔 ‘양념 친 정보 공작(seasoned information operation)’이란 말이 있다. 가공된 정보를 언론에 흘린다는 뜻인데, 허위 정보 유포나 역정보 살포와는 의미가 다르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 발생해 침묵하고만 있을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수법인데, 언론의 정보 갈증을 풀어 줌과 동시에 공식적으로는 공개할 수 없는 정보기관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날 정보(raw information)’를 제공해선 안 되며, 20% 정도의 ‘조미료’를 가미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한다. 잘못하면 정보 출처 등이 알려질 우려가 있으며, 신비화하는 편이 정보기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방첩 담당인 MI5가 아닌 대외첩보 담당인 MI6가 태 공사와 접촉했다는 이야기를 놓고도 온갖 음모설이 난무한다.

과거엔 MI6 존재 자체가 국가기밀이었다. 조직 책임자가 공개되지 않은 것은 물론, 관련 법안도 없었다. 주 타깃이었던 소련이 붕괴한 이후인 1994년에야 관련법을 만들고 존재를 공인했다. 이스라엘 모사드는 현재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MI6는 2006년에 첫 공개 채용 광고를 냈는데, 2014년엔 한국어 전문가도 공채했다고 한다. 정보기관은 태생적으로 음지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민이 나를 감시하는 음습한 존재로 여기느냐, 아니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주는 수호천사로 생각하느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