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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전기요금 폭탄에 분노한 민심은 끝 모를 폭염처럼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정부의 어설픈 변명은 불난 가슴에 기름을 부었고, 마지못해 내놓은 찔끔 생색은 ‘장난하냐’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일이 터지면 늘 그랬듯 ‘위원회’를 만들어 급한 불을 끄려는 모양새다. 새누리당과 정부, 민간 전문가 15명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다.

아직 본격 협의가 시작되지 않았어도 이들이 내놓을 결론은 벌써 짚이는 분위기다. 6단계, 11.7배에 이르는 가정용 누진 수준을 3단계, 3배 안팎으로 축소할 거라는 ‘3·3안’이 유력하게 나돈다. 주택용·산업용·일반용·농사용·교육용·가로등의 6가지 용도 분류에서 주택용 부담을 다소 낮춰 민심을 달래는 방안도 예상된다. 만일 이 정도 개편안이 나오면 전기료 갈등은 해소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전기료 사태는 누진제 불만 형식으로 불거졌지만, 근저에는 왜곡된 요금체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근원을 건드리지 않는 한 미봉책만 나올 뿐이다. 전기료 개편은 정부와 사회 전반에 퍼진 도그마를 깨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누진제 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발상부터가 고정관념이다. 전기는 상품이다. 라면을 사거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면 그만이다. 상품시장에서는 많이 구매하면 깎아주긴 해도 더 내라고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한국 전기료엔 빈부 개념이 개입돼 있다. 소득세율보다 가파른 징벌적 누진 구조다. 감사원이 챙겨본 바로는 누진제 1구간 사용자의 94%는 저소득층이 아닌 일반 1·2인 가구였다. 1974년 첫 도입 때는 나름 명분이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 잣대론 시대착오다. 완화 아닌 폐지가 원칙이다.

집에서 전기를 아껴쓰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도 지났다. 주택용 전기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거의 절반이고, 미국의 30%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보급률 80%에 달한 에어컨을 켤 때마다 죄책감이 들도록 눈을 흘겨온 정부다. 주택용 소비 비중은 2004년 21%에서 지난해 14%로 떨어졌다. 가정에서 웬만큼 더 써도 별 영향은 없다. 더구나 주택용 전기 사용은 휴일이나 저녁 이후에 집중돼 전력 피크타임인 평일 낮 시간대와 무관하다. 주택용 누진제는 요금·절전·분배 등 3가지 정책 목표가 뒤섞이면서 괴물이 되고 말았다.

산업용을 낮게 책정해 가정용에 덤터기 씌운다는 얘기 또한 억측이다. 1970년대만 해도 공장을 돌리는 전기는 선, 집에서 쓰는 전기는 악이라는 2분법이 통했다. 실제로 산업 현장의 값싼 전기를 위해 국민이 얼마간 희생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지속적인 인상으로 산업용의 원가회수율은 109%로 원가를 넘어섰다. 산업용은 고압이라서 배전비용이나 손실률이 낮기 때문에 다른 용도와 일률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흥미로운 건 야당의 입장 변화다. 야당은 과거 누진제를 손보려는 정부 시도에 빈부 시각으로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이번에 서민·중산층까지 들고일어나자 기존 논리가 궁해졌다. 그러자 표적으로 삼은 것이 산업용이다. 대기업 특혜를 거론하며 전기료를 올리라는 주장은 법인세 인상론과 닮아 있다.

당정 TF가 할 일은 해묵은 모순을 바로잡는 것이다. 전기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있다. 정부가 어쭙잖은 정의나 선의를 앞세운 ‘가격 결정자’의 지위를 내려놓고 시장 기능에 맡기는 것이다. 국내 전력시장은 발전회사들이 파는 전력을 한전이 모두 구입해 판매하는 구조다. 한전의 55년 독점 체제를 그대로 두고 전기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긴 불가능하다. 세계는 전기료시장을 경쟁체제로 전환한 지 오래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이스라엘·터키 정도를 빼면 전기료 소매시장을 민간에 개방했다. 일본만 해도 2000년 이후 3단계 자유화 과정을 거쳐 올 4월부터 일반 가정 전기료까지 전면 자유화했다. 기존에는 지역별 10개 전력회사가 구역을 독점했으나 규제를 풀자 100개가 훨씬 넘는 민간 사업자가 뛰어들어 다양한 요금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통신요금이 그랬듯 경쟁은 소비자 위주로 시장을 재편한다. 전기료도 시간·계절 등을 감안한 맞춤형 요금제를 거쳐 가스요금·통신료·케이블TV 등과 연계한 통합 요금 상품이 등장할 것이다. 이때쯤 되면 전기료만의 누진제는 의미가 없어진다. 전기료의 해답은 시장, 그리고 경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