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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바라보는 호남의 시선이 복잡하다. 이제부터 ‘묻지 마 투표’가 아니라 인물 중심의 선택을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호의적 전망, 집권 연장을 위한 보수의 전략적 선택일 뿐이라는 평가절하, 호남을 팔아 한 자리 챙긴 비루한 정치라는 극단적 폄하 등 다양하다. 그럼에도 현실은 현실이다. 이 대표는 새누리당의 정치적 황무지 출신인 것만으로도 숙명적 비주류이고, 개인적으로는 보수 주류의 특성인 좋은 학력·경력·재력·집안 어느 것도 변변치 못한 ‘근본 없는 놈’인데, 당당히 선출됐다. 친박 ‘오더 투표’ 덕분이란 분석도 있지만 전반적 상황을 보면 설득력이 약하다. 기존 정치 문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런 파격은 또 다른 파격적 결과를 낳게 된다.

여당의 선택이 모가 될지 도가 될지 전망하기 위해서는 이 대표 이면에 감춰진 진정한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비박은 ‘미래 권력’으로 인정받는 데 실패했다. 과거 같으면 권력의 무게중심이 미래로 움직이기 시작할 텐데, 도로 친박으로 집중됐다. 총선 패배 책임이 친박 패권에 있는 것처럼 비쳤음에도 당심·민심에서 모두 졌다. 민심은 비박에게서 정치 개혁 의지나 역량을 발견하지 못했고, 당심은 보수 정체성을 의심했다. 비박 잠룡들은 이런 의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어야 희망이 있다.

둘째, 친박·비박 차원을 넘는 정치 지형 격변의 신호탄이다. 이 대표만큼 정치의 밑바닥까지 체험하고, 현실 정치의 메커니즘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야권 호남 인사들의 한(恨)과 그 방향은 다르지만 이 대표의 한 역시 만만치 않다. 당권을 장악한 이 대표는 ‘국민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치·국회 개혁’을 공약했다. 실제로 파격적인 아이디어도 상당수 가지고 있다. 개혁 성과를 내고 국민 지지를 받게 되면 ‘호남 보수’도 가능하다. ‘전남방직’ 아들인 김무성 전 대표, 호남의 사위라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 전남 출신 첫 총리인 김황식 전 총리 등 ‘3김’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망국적 지역감정을 부수는 망치로 작용한다. 지역감정의 연원을 따지면 삼한시대나 삼국시대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현대 정치에서는 1960년대에 시작됐다.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는 15만6026표 차(1.5%)로 당선됐는데, 전남(당시 광주 포함)에서만 28만4912표 이겼다. 그런데도 호남을 멀리했고, 1971년 대선 때 급속히 나빠졌다. 김대중 후보가 향토예비군·교련 철폐와 4대국 보장론을 내걸면서 ‘이념’ 분열의 단초도 생겼다. 2단계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인데, 반미(反美) 정서가 더해졌다. 3단계는 1987년 양김의 분열과 1990년 호남만 제외한 3당 합당이다.

다행히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반전되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은 ‘피해 당사자가 화해 적임자’라며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결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4년 김 대통령을 찾아가 “아버지 시절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했고, 김 대통령은 “박 대표가 지역갈등 해소와 국민화합의 적임자”라고 답했다. 그 뒤 천막 당사 시절부터 박 대통령은 호남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 대표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당시 이 대표는 광주 서구을 선거구에 출마해 악전고투 끝에 겨우 720표(0.7%)를 얻었는데, 박 대통령이 격려하고 발탁했다. 박 대통령과 이 대표가 그런 초심으로 노력하면 망국적 현상을 해결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정치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록 아버지의 유산이지만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의미도 있다.

아직 이런 세 측면은 현상이고 가능성일 뿐이다. 결과는 박 대통령과 이 대표가 하기에 달렸다. 그런데 여전히 ‘불통’ ‘독선’ 비판을 받는 박 대통령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16일 단행된 개각을 보면 민의는 뒷전이다. 이 대표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대표 출마선언에서 밝힌 ‘서번트(servant) 리더십’과 ‘수평적 정치구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처럼 행동하면 끝이다. 진정성을 갖고 지역감정 문제에서 성과를 낸다면 그것만으로 큰 업적이다. 국정 동력 회복, 나아가 정권 재창출의 불씨도 된다. 그러나 반대라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 국민과 당원이 파격적 기회를 줬다. 이를 살리지 못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