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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영 워싱턴 특파원

2002년 5월 햇병아리 기자로 취재했던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정치인들만의 잔치였다. 지역별 대의원단은 거수기에 지나지 않았고, 연설자들은 한나라당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인들이었다. 전당대회 시간도 4시간에 불과했고, 연설도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당위만 나열하는 천편일률적 내용이었다.

반면 7월 말 관전한 미국의 민주·공화당 전당대회는 색달랐다. 대선 후보를 지명하는 목적은 같았지만, 그 과정은 ‘축제’였다. 각각 4일간 열린 전당대회는 매일 밤 5∼6시간씩 열렸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사들이 대거 연설자로 나섰다. 정치인뿐만이 아니었다. 가수·배우에서 퇴역 군인, 장애인, 일반 시민까지 다양했다. 민주·공화당 전당대회에는 미국 각지에서 각각 7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 중 정식 대의원은 민주당은 4764명, 공화당은 2472명에 불과했다.

정당 대의원이 아닌 인사가 더 많았던 것은 전당대회의 ‘진짜’ 기능이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한 당 단합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전당대회를 통해 설득력 있는 정책·이념으로 잠재적 지지층을 끌어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공화당은 4년마다 열리는 대선의 해에는 연이어 전당대회를 개최, 미국인들이 쉽게 양당의 차이를 분간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에서 전당대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자기 당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일종의 이념·정책 설명회인 셈이었다.

이런 미국도 정치 양극화 시대에 직면해 있다. 정책뿐만이 아니다. 화법·화술까지도 크게 다를 정도다. 최근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매슈 젠츠코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2009년까지 지난 136년간 미국 의회 연설을 분석한 결과 양극화 수위는 1990년대 중반 크게 올랐다가 다소 가라앉은 뒤 2009년 최고조에 달했다. 연설자가 민주·공화당 중 어느 당 소속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확률이 1874년에는 반반인 54%였다면, 2009년에는 83%까지 올라갔다. 게다가 똑같은 현상도 각 정당의 프레임에 따라 다른 개념으로 포장된다. 세금 감면을 민주당에서 ‘세금 우대 조치(tax breaks)’라고 칭하면, 공화당은 ‘세금 경감(tax relief)’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런 차이는 이번 민주·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확연히 감지할 수 있었다. 형식 면에서도 공화당 전당대회가 절제된 분위기의 백인 중심 행사였다면, 민주당 전당대회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 대거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내용에서도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보호무역주의·고립주의 정책을 내건 반면,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미국은 여전히 강하며, 어려운 도전을 함께 극복하자”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한국에서도 각 정당의 상황 인식·해법은 타협이 불가능할 정도로 양극화가 진행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9일, 27일 전당대회를 연다.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책 기조·이념을 점검하는 자리다. 하지만 벌써 양당 전당대회가 차기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당내 계파 간 다툼의 장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관측만 팽배하다. 역대 가장 비호감 후보끼리 맞붙는, 가장 이례적인 대선이 될 것이라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전당대회는 국민과 소통하는 최소한의 기능·역할은 해냈다.

우리 정치권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대표되는 국제정치 격변기에 치러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열리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차별화된 정책·이념을 치열하게 고민·토론하는 노력을 통해 국민을 정치 혐오증에서 건져 올렸으면 한다. 실패한다면 우리도 내년에,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선동가의 탄생을 목격할지 모른다.

boyoung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