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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 부장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가볼 만한 여행지, 맛집 같은 여행 관련 분야를 빼놓고 가장 많이 추천되는 것이라면 책이 아닐까 한다.

“나에게는 하버드 졸업장보다 책 읽는 습관이 더 소중하다”는 자타 공인 독서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가 지난 5월 일찌감치 여름 휴가지에서 읽을 책 5권을 추천한 데 이어 도서관, 서점, 출판사는 물론 언론과 개인에 이르기까지 앞다퉈 여름 휴가지 책 목록을 내놓고 있다. 사람들이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다는 시대에 쏟아지는 책 추천이 신기하기도 하다. 사람들에겐 여전히 책을 읽고 싶은 욕망과 열망이 꽤 강렬한 것 같다. 어쩌면 여름 휴가지 책은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이때 책은 휴식, 여유, 한가로움, 비로소 돌아보는 나 자신과 자신에 대한 온전한 집중 같은 일상에서 갖지 못한 달콤한 것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10명 중 3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고, 한국인의 독서량도 연평균 9.1권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조사 대상의 65%가량이 ‘스스로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답했고, 평소 책을 충분히 읽지 못하는 이유로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를 꼽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쏟아지는 여름휴가 추천목록들 속에서 이제 여유로운 시간이 났으니 책을 펴보고 싶다는 마음을 엿보게 된다.

우리 시대 가장 유명한 여행작가인 빌 브라이슨은 “여행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며 노력하는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비틀어 보면 여행은 일상 속에 없는 것들, 잃어버렸던 것들을 찾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행 책들도 그런 것이다.

여행이 삶의 한 부분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소설을 쓸 때 초고를 쓰고 고친 뒤 한 달 정도 여행을 다녀온다고 한다. 하루키는 이 과정을 ‘양생’이라고 했다. 그냥 가만히 놔둬 바람을 쐬게 하면서 자기 안이 단단히 굳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글도 머리도 새로운 상태가 되고 그다음 철저한 고쳐 쓰기에 들어가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결점이 또렷하게 보인다고 했다.

우리에겐 하루키처럼 스스로를 양생시킬 한 달의 여유란 쉽지 않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고위 신하들에게 3년에 한 번꼴로 한 달 남짓 일명 ‘셰익스피어 버케이션’이라는 유급 독서휴가를 주었다지만 이 역시 먼 역사 속의 일일 뿐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한국인 여름휴가 계획을 보면 우리 국민 100명 중 47명이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는데, 여행 평균 기간은 2.9일(2박 3일)이 42.5%로 가장 많았다. 다른 조사들을 살펴봐도 한국인의 여름휴가는 3, 4일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여기저기 다니고 사진 찍고, SNS에 올리고, ‘좋아요’를 누르느라 바쁘다. 평소보다 더 힘들고 피곤해질 수 있다.

이번 휴가엔 휴대전화도 손에서 놓고, SNS도 쉬고, 사진으로 찍고 올리기보다는 마음으로 보고, 느끼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여행 가방 안에 던져넣은 책도 펴보면서 말이다.

c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