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종헌 전 남영비비안 사장이 자신의 북카페에서 그동안 수집한 2000여 점의 서화 중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김종헌 전 남영비비안 사장의 서가를 보면 방대한 지적 호기심에 놀라게 된다. 책을 살펴보니 어학, 경영, 역사, 문학에 이르기까지 ‘촉수’가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어렸을 때 천자문부터 서예, 불교,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정보기술(IT)을 공부할 정도로 배우고 싶은 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그는 서울고 재학 시절 자신에게 축적된 인문학적인 기풍과 분위기, 역량을 습득했다고 무한한 애정을 표현했다. 조병화 시인, 조영식 전 경희대 총장, 색동회 멤버인 진장섭 교수 등이 당시 서울고 교사로 후학을 길렀다. 그야말로 제제다사(濟濟多士)였다.

“학교에 영어신문부터 연극, 산악, 펜싱, 아이스하키, 오케스트라, 합창 등 웬만한 동아리가 다 있었어요. 고3 때는 세 분의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치셨는데 입시교육이 아닌 살아 있는 문장의 의미를 가르쳐 주신 게 정말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교과서를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토인비, 아인슈타인, 헉슬리 등의 명문장을 배웠으니까요. 요즘 교육이 입시 위주로 흘러 후퇴하고 대학에 가서도 취업만 생각하는데 아쉬움이 많지요.”

1966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아무도 중국어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홀로 중국어 공부를 했다. 이미 중국과 일본 관련 책을 각 3000여 권, 2000여 권 갖고 있었다. 그는 “중국어 교본이 없어 등사판 교재로 공부했다”며 “대학 때 책 볼 욕심에 중국어, 일어 공부에 매달렸다”고 했다.

일화도 하나 있다. 어학 실력이 뛰어났지만, 카투사에 입대한 후에도 자막 없는 기지촌 영화를 하루에 2편씩 6개월을 보며 귀를 뚫었다고. 영어에 한문 글씨도 잘 써 미 8군 본부 인사과에 뽑혀 복무하기도 했다.

그가 수집한 책 중에는 의미 있는 게 많다. ‘오륜행실도’ ‘이륜행실도’ ‘부모은중경’ 등 희귀 고서부터 우리나라에서 처음 서양철학을 공부한 1세대 철학자로, ‘바위고개’를 작곡한 이흥렬 선생의 백형인 이경렬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공부한 철학책도 소유하고 있다. 고물상에 버려진 것을 수집했다고.

“요즘 대학에서도 공간, 인력이 없다며 고서조차 기증을 받지 않아 사장되고 있어요. 그런데 구글을 검색하면 구할 수 없는 자료와 책이 튀어나옵니다. 전 세계 지적재산 콘텐츠를 담고 있는 건데 나중에 유료화하면 별수 없이 사볼 수밖에 없어요. 책을 쓸 때는 컴퓨터로 쓰지만 데이터는 결국 고전, 아날로그에서 나오잖아요. 그 의미를 잘 새겨야 합니다.”

춘천 =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