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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간의 모든 것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은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한 비극과 희극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 현재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역사에 눈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역사드라마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도 그런 현상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역사드라마가 깨달음과 교훈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과 극적 재미의 절묘한 조화가 중요하다.

MBC 창사 55주년 특별기획 ‘옥중화’는 조선 명종 대를 배경으로 천재 소녀 옥녀(진세연)의 영웅적 면모와 조선 상단을 좌지우지하는 인물 윤태원(고수)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 역사드라마이다. 권력형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으로 역사적 평가가 끝난 실존 인물들에 맞서는 허구적 인물들의 시련과 고난 그리고 성공을 통해 교훈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하다. 감옥에서 태어나고 자란 옥녀와 윤원형(정준호)의 서자로 설정된 윤태원은 허구적 인물이다. 명종(서하준) 즉위 후 8년간 수렴청정을 했던 문정왕후(김미숙)의 권세를 등에 업고 온갖 전횡을 일삼는 윤원형과 정난정(박주미) 등이 실존 인물로 등장한다.

전옥서(典獄署)가 주요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된 경우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역사드라마에서 한 번도 주요 공간으로 설정된 적이 없었기에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했다. 현대의 교도소에 해당하는 전옥서에서 태어난 옥녀가 천재적인 두뇌와 뛰어난 학습 능력으로 죄수들로부터 습득한 탁월한 능력을 활용해 숱한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준다는 내용에 시청자의 기대가 컸던 것도 그래서이다. 하지만 전옥서가 주인공 옥녀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공간에 머물러 시청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옥녀를 중심으로 한 상황 전개의 지지부진함을 전옥서 관리들의 좌충우돌로 해결하기 위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문정왕후의 동생이자 당대 최고의 권세가인 윤원형의 서자로 태어난 윤태원이 조선의 상단을 좌지우지하는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반항적이고 냉소적으로 살아가던 윤태원은 장사에 뛰어들어 상단의 행수가 된다. 하지만 문정왕후와 윤원형이 뒷배를 봐주는 정난정의 계략에 막혀 매번 어려움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왈패 두목을 처리하기 위해 전옥서에 들어왔다가 알게 된 옥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암행어사 행세를 하면서 옥녀를 지원하는 명종을 질투하는 윤태원의 모습에서 전체적인 방향을 상실하고 파편적인 극적 재미에 함몰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까지 했다.

앞으로 전개될 고난과 시련의 과정에서 옥녀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예고되어 있다. 어린 시절 전옥서에서 인연을 맺은 이지함과 전우치를 비롯해 의적 임꺽정과 명기 황진이에 이어 의녀 대장금의 도움으로 영웅적 면모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옥녀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이 어린 시절의 총명함과 달리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주위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그녀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고 있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