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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 베이징 특파원

중국 온라인은 민족주의·애국주의로 들끓고 있다. 남중국해와 관련한 분노의 화살은 미국을 향하고 있지만 이들의 구호에 간혹 한국이 끼어 있기도 하다. “우리가 왜 미·일·한·필리핀에 여행을 가고 그들의 물건을 사서 경제적인 이득을 줘야 하는가”라고 할 때다. 한국이 낀 이유는 남중국해 때문이 아니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때문이다.

다행히 ‘삼성 휴대전화’를 부쉈다거나 한식당에 가서 불고기를 먹는 중국인들에게 “당신들이 중국인이냐”고 호통쳤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폰을 부수는 영상이 유행처럼 돌고 있으며 곧 출시될 아이폰 대신 화웨이(華爲) 휴대전화를 사자는 호소가 SNS를 통해 나돌고 있다.

KFC 앞에 ‘당신들이 KFC에서 먹으면 조상들 볼 면목이 없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수십 명이 시위를 벌이고 식당에 진입해 식사하는 손님을 둘러싸고 야유를 퍼붓기도 한다.

이 같은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이 극도에 달했을 때 중국 각지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대규모의 격렬한 반일 시위들이 벌어졌다. 성난 군중이 토요타 자동차를 부수고 일본 상품 판매점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했으며 애꿎은 중국인 차주가 사망하기도 하는 등 광기에 가까운 집단행동이 연달아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일본 제품이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이 급강하했으며 이후 수년 동안 회복하지 못했다. 일본 의류 기업 유니클로는 중국 내 매장에 ‘댜오위다오는 중국 고유의 영토임을 지지한다’는 팻말을 내걸고 살아남았다.

국내에서는 사드로 인해 중국이 보복할 수 있다는 경계심이 높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일본에 대한 태도와 사드로 인한 한국에 대한 감정은 차원이 다르다. 중국은 남중국해 및 댜오위다오 문제를 주권과 영토에 관한 ‘핵심이익’으로 보고 있다. 사드는 다르다. 아직까지 중국 정부 차원의 ‘보복’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 정부의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엄포는 미래형이다. 한국을 설득하는 끈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친구’라고 불렀으며 더 설득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대 놓고 ‘경제 보복’에 나서는 순간 중국은 세계 무역 질서의 교란자가 되며 국제무대에서 스스로의 위상을 더욱 실추시키며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과거 중국이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자 당장 일본 기업이 피해를 봤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은 대체 수입경로를 개척했고 결국 희토류 가격이 하락하면서 중국의 희토류 산업 자체가 큰 피해를 보았다. 일본 기업들은 중국에서 철수해 동남아로 생산 기지를 옮겼다. 상호 연관성이 강한 경제의 특성상 ‘경제제재’라는 것은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대중 의존도가 높지만 중국 입장에서 한국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갖고 있다. 한국은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중국에 투자하는 주요 투자국이다. 자국 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유엔 대북제재에도 각종 구멍을 뚫었던 중국이 북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경제적 비중을 가진 한국을 대대적으로 ‘제재’한다면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것이 뻔하다. 한국이 가진 외교적인 위치를 감안한다면 중국은 더욱 한국을 쉽게 놓을 수 없다. 한국에 강경하게 대응해 한국마저 중국에 등을 돌릴 경우 중국의 동부는 그야말로 ‘미국에 포위’되는 셈이다. 이런 점을 계산한다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국제 규범에 어긋나는 수준의 경제 보복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직접 대응이 없더라도 중국이 민족주의·애국주의적 여론을 통제하지 않는 방법으로 한국 기업에 피해가 오도록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눈을 부릅뜨고 대비해야 한다.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사드 배치를 계기로 중국을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으로 국익에 맞지 않는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자위적인 안보 수단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을 멈춰선 안 되며 이와 별개로 경제협력과 북핵 문제와 관련한 안보협력의 끈을 놓아서도 안 된다.

go@

이미지 크게보기 남중국해 영유권 관련 중재재판 판결에서 완패한 중국이 판결을 무시하고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가운데 존 리처드슨(왼쪽 두 번째) 미 해군 참모총장이 17일부터 나흘간의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 우성리(吳勝利·왼쪽 세 번째) 중국 해군 사령관 등과 함께 중국 해군을 사열하고 있다. 미·중 해군 수뇌부의 회동은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