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朴의 迷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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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권불십년(權不十年). 정치권력이 10년 가기 어렵다는 이 말은 내년이면 30년을 맞는 한국 민주주의에도 딱 들어맞는다.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10년 주기로 보수 세력과 민주·진보 세력이 교차 집권한 결과다. 물론 내년 12월 대선 결과를 봐야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미국 등 여러 정치선진국에서도 10년 전후로 정권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현상적 의미보다 중요한 이면이 있다. 적절한 기간을 넘기고도 상응하는 변화가 없으면 불행한 종말을 맞는다. 정권이든, 정파든, 정치인이든 마찬가지다.

친박(親朴)의 역사도 10년에 가깝다. 그 연원은 2002년 박근혜 대통령이 창당했던 한국미래연합이다. 그런데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던 7명의 운영위원, 38명의 창당 준비위원 가운데 지금 현역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은 박 대통령 외에는 없다. 2004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시절 참모 그룹이 있었지만 정치 세력화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을 계기로 이뤄졌다. 이명박 후보에게 당원 투표에서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진 억울함 때문에 결속력이 더 강해졌다. 2008년 친이(親李)에 의한 ‘공천 학살’은 친박을 운명공동체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이명박정부 내내 ‘여당 내 야당’이었다.

이런 친박의 원초적 한계는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없다. 박 대통령도 “친박을 만든 적 없다”면서 “선거 마케팅에서 나온 것이니 없애라 마라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다”고 했다. 4·13 총선 참패 직후의 발언이니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친박의 최대 구심력이 ‘공천과 당선’임을 인정한 셈이다. 여기에다 현 정권에서 한자리해 보려는 적극적 동기, 뭉쳐야 산다는 소극적 동기가 가세하고 있다. 이러니 유승민 의원을 내치면서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을 뿐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원조 친박인 유 의원이 되레 당헌과 강령을 앞세우고 있어 더 깊이 들어갔다가는 늪에 빠질 판이다. 정체성 중심으로 뭉친 세력이 아니니 친박에서 이탈해 탈박·짤박·반박은 물론 심지어 야당행(行)도 이상하지 않다. 민주화 이후 의미 있는 정치 계파는 상도동계, 동교동계와 친노, 친박 정도다. 앞의 두 경우는 반(反)독재에다 지역에 기반을 둔 정체성이 선명했고, 친노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음에도 확고한 구심력을 유지하고 있다. 친박과는 대조적이다.

이제 박 대통령 임기는 종반으로 접어들고, 한 달 후에는 전당대회가 열린다.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당권 장악에 올인하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박 대통령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내걸지만 본심은 친박 의원들의 집단적 활로 모색일 뿐이다. 공천 파동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 여론은 뒷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권불십년의 이치를 이길 수는 없다. 이미 사분오열 조짐이 보인다. 핵심 인사들은 각개약진할 태세다. 갈수록 분화는 격화할 것이다. 게다가 인사 비리, 공천 헌금 등 온갖 소문이 무성하다. 역대 정부에서 예외 없이 이어졌던 실세 인사들의 사법 처리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지금 친박은,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처럼 동굴에 갇혀 등 뒤 불빛에 비친 그림자를 쫓는 것 같다. 국민 다수는 여당 참패의 책임이 친박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도 무조건 당권만 잡으려 한다. 비박에 당권을 넘기느니 소수일망정 친박끼리 똘똘 뭉쳐 야당을 하는 게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동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오직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된다. 국민은 지금 친박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친박 후보를 단일화해 표를 몰아주려 안간힘을 쓰기보다 국민이 어떤 당 대표, 어떤 노선, 어떤 리더십을 원하는지 살펴 거기에 상대적으로 더 부합하는 사람을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보수의 현 위기를 극복하고 시대적 과제 실천에 나서야 한다. 보수주의 정치철학 권위자인 노재봉 전 총리는 한국에 아직 진정한 보수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친박이 묵묵히 보수 정체성을 가진 정당 구축에 앞장서는 것이 ‘창조 정치’다. 이것만 성공하면 그 과정에서 해체되든,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국민은 미로(迷路)를 헤매는 집권 주류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들이 실패할 우려 때문이 아니라 나라의 불행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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