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동대문아파트는 지어진 지 50년 된 건물이지만 가운데가 비어있는 독특한 구조로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됐고,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동대문아파트

홍대 뒷골목, 검은색 밴이 어느 집에서 빠져나오니 함성과 동시에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엄청나다. 밴이 지나간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뭐 하는 곳이냐고 물어보니 유명 연예인이 소속사 겸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집이란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상생활이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집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연예인들에게는 그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꼭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연예인아파트라는 별명이 있는 동대문아파트는 1965년에 지어진 6층 건물로 당시에는 최고층 아파트였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소개되기 시작한 초기에 첨단의 이미지와 익명성이 보장되는 아파트 구조는 일상생활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연예인들에게 매력적이었다. 건물 내부가 비어있는 중정형 공간구성은 내부의 활동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아 더 유리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 KBS가 남산에 있었기 때문에 방송국이 가까운 동네를 선호한 것이 동대문 연예인아파트가 탄생하게 된 이유이다.

동대문아파트는 한 집의 크기가 28.8㎡(8.7평)로 2개의 방과 부엌, 화장실로 구성된 요즘 유행하는 작은 원룸과 유사한 평면구조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을 지나 높이가 꽤 되는 마루에 올라야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는 온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아궁이는 아랫집 부엌 천장으로 내려가 있어 독특한 모양을 이룬다. 각층에서 사용한 연탄을 버리는 연탄재 투하관은 지금의 쓰레기 투하구의 초기모습으로, 투박하지만 편의시설에 대한 배려가 정겹다. 중정의 도르래 빨랫줄과 가구별로 설치된 굴뚝이 있는 옥상은 그 독특한 매력으로 인해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으며 생활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요즘에는 많은 수의 연예인들이 영향력 있는 기획사에 소속돼 활동하는 경우가 흔하다. 연예계 활동 영역도 넓어져 방송도 중요하지만 콘서트, 팬 미팅, 해외공연 등 소속사의 기획력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이러다 보니 연예인들도 일반 직장인처럼 자연스럽게 소속사가 있는 근처 동네에 사는 집을 정하거나 차로 접근하기 쉬운 곳을 선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표 연예기획사 중 하나인 YG엔터테인먼트는 사옥이 서울 마포구 합정역 근처에 있는데 이 사옥과 가까운 한 아파트에는 YG와 관련된 연예인 외에도 개그맨, 가수, PD, 기획자 등 방송 관련 종사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파트 내부에 도서실, 카페, 운동시설이 있고 아파트 지하에 생필품을 살 수 있는 대형 마트가 있어 웬만한 일상생활은 외부노출 없이 해결할 수 있다. 또 비상용엘리베이터가 있어 일반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 간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된다. 무엇보다도 다른 장소로의 차량 이동이 쉬운 강변도로에 인접한 점이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아파트가 됐다.

집은 누구에게나 하루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휴식하고 내일을 위해 충전하는 공간이다.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사생활은 보장받아야 한다. 충분히 쉬고 준비해야 좋은 노래, 감동적인 연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인터넷에 어느 아파트에 누구누구 연예인이 산다는 기사를 보곤 하는데 진짜 그곳에 사는지 확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을 갑자기 우리 집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우리 동네 사세요?”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