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카럴 아펄이 그린 그림으로 시장에서 유통됐던 작품 ‘새’. 카럴 아펄 위작 전문가인 얀 얀선이 그린 것이다.

천경자·이우환 ‘위작 시비’… 해외선 어떻게 대처하나

진품 여부를 놓고 아직 현재진행형인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에 이어 이우환 화백의 ‘점, 선 시리즈’ 역시 위작 논란에 휘말리며 국내 미술계가 시끄럽다. 최근 경찰에서 수사 중인 이우환 화백의 작품 13점에 대해 작가 본인은 모두 진품이라고 최근 주장했지만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 화백의 작품을 위조한 혐의로 화가 이모(39) 씨를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이처럼 미술작품을 놓고 벌어지는 위작 시비는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었다. 루벤스(1577∼1640)는 상당수 작품이 제자가 그려준 것들이고,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 중에도 대필작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얘기도 있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계속 위작 의혹을 받고 있으며 영국의 데이미언 허스트, 네덜란드의 카럴 아펄(1921∼2006),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현대미술의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 역시 한때 위작 논란에 휘말렸다.

따라서 어떤 작가에게도 위작이 따라다닐 수 있는 만큼 중요한 것은 위작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이다. 천경자, 이우환 화백의 경우처럼 ‘작가와 감정기관’이 진품 여부를 놓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계속하는 것은 국내 미술계를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선 해외에서는 작가들이 작품의 감정에 대부분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이우환 화백은 경찰에서 위작으로 판정한 13작품에 대해 본인이 직접 눈으로 보면서 진품임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외에서도 진품 여부를 가려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런 주문은 받은 적이 없고, 다만 훼손된 작품의 복원 방법에 대해 물어온 적은 있다”고 말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해외에서도 작가의 판단과 권위는 최대한 존중하지만 복수의 전문가가 동의하지 않으면 작가 본인도 오류를 겸허하게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네덜란드의 거장 카럴 아펄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경매에 나온 자신의 위작에 대해 성급하게 진품 확인을 해줌으로써 크게 빈축을 산 적이 있다. 그의 위작은 네덜란드의 전설적 위조꾼인 얀 얀선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사례에서는 국내 화단에서도 보고 배울 점이 많다. 지난 연초에 방한한 리히터의 전작도록 저자 디트마 엘거는 1960년대 후반 작품부터 뒷면에 일련번호를 써놓았기 때문에 식별과 관리가 용이했다고 말했다. 고유 번호와 전작도록을 비교해 위작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뒤늦게나마 국내 유명작가들의 전작도록 제작에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체부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대표적인 인물인 박수근, 이중섭 작가의 전작도록을 만들고, 원로 작가인 박서보, 이승택, 최만린의 디지털 자료집도 제작할 계획이다.

최근 일고 있는 위작 시비에 대해서는 감정시스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이전과 같은 전문가들의 안목 감정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안목의 직관력은 물론 과학기술적 감정 방법까지 겸비한 전문 감정사를 정부 주도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