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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차별화된 표현을 담은 유행어는 특정 시기에 누가(혹은 무엇이) 인기가 있었는지,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지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과 같다. 일상적 모임에서 “조세호 씨는 안 왔어요?”라는 참석자의 질문에 웃음 지은 당신이라면 2016년 상반기 동안 유행의 흐름을 잘 읽어 왔다는 것이고, 이 질문에 “그것이 뭣이 중헌디?”라고 정색하며 답하는 또 다른 참석자의 답변에 움찔 놀란 당신이라면 세파에 치여 너무 앞만 보고 지난 반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웬열~”-1988년이 묻고 2016년이 응답하다

지난 연말과 올해 초를 관통한 케이블채널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덕선(혜리)이 습관처럼 던지던 말이다. 놀랍거나 어이없는 상황에 닥쳤을 때 툭 내뱉는 은어로 1980년대 말 두루 쓰인 표현이다. 역대 케이블 드라마 최고 시청률(18.8%)을 기록한 ‘응답하라 1988’의 인기와 함께 2016년을 사는 10대들이 부모님 세대가 쓰던 이 유행어를 다시 쓰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용례 : A-“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대” B-“웬열~”

◇“~하지 말입니다”-송중기가 군인의 이미지를 바꾸다

영화 ‘아저씨’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원빈이 ‘아저씨’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바꿨듯, 지난 2월 방송을 시작한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송중기) 대위의 ‘다나까 말투’는 상반기 내내 회자되며 다양한 패러디를 양산해냈다. 다소 딱딱한 이 말투는 오히려 남자다움을 드러내면서 은근히 누군가를 챙겨 주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심(女心)을 흔들었다.

용례 : A-“브렉시트가 도대체 뭡니까?” B-“내 주식을 박살 낸 X이지 말입니다.”

◇“조세호 씨는 안 왔어요?”-김흥국 작사&조세호 작곡

인기는 의도치 않은 방향에서 나온다. 지난해 6월 방송된 MBC 예능 ‘세바퀴’에서 개그맨 조세호는 “왜 안재욱의 결혼식에 오지 않았냐”는 가수 김흥국의 질문에 “모르는데 어떻게 가냐”고 답했다. 이 장면이 뒤늦게 SNS에서 화제를 모으며 조세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타 덤에 올랐고 김흥국은 ‘예능 치트키(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명령을 뜻하는 통신언어)’라 불리게 됐다. 지드래곤, 조승우, 김희선 등이 공식 석상에서 오지 않은 조세호를 찾았고, 그는 ‘프로불참러’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용례 : A-“조세호 씨는 안 왔나요?” B-“모르는 사람이라 연락을 안 했어요.”

◇“뭣이 중헌디”-황정민, 곽도원이 무릎을 꿇다

7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영화 ‘곡성’ 속 효진의 대사다. 황정민, 곽도원, 천우희 등 내로라하는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총출동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들은 효진 역을 맡은 아역 배우 김환희를 먼저 떠올렸다. 귀신에 빙의돼 아버지를 향해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이 씨XX아’라고 외치는 장면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황정민은 기자간담회에서 ”아역 환희한테 밀렸다. 곽도원에게도 ‘우린 나가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그의 연기를 칭찬했다.

용례 : A-”어린이집 집단휴원으로 불편이 많다며?“ B-”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아재 개그

지난 상반기에는 난데없는 ‘아재 개그’가 화제를 모았다.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는 철 지나고 썰렁한 개그가 판쳤다. 셰프테이너의 선두주자인 오세득이 선봉장이었고 tvN ‘SNL 코리아’의 신동엽 등이 가세했다. 처음에는 ”짜증난다“는 반응을 보이던 이들도 하나둘 반복되는 아재 개그에 매료되는 묘한 현상이 빚어졌다. 왕이 궁에 가기 싫을 때 하는 말은 ‘궁시렁(싫어) 궁시렁’이고 꽃가게 주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시드니’, 이런 식이다.

용례 : A-”술안주로 감자탕 먹을 때 들깨를 넣으면 안 된다며?“ B-”맞아, 술이 들깨(덜 깨).“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