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對北압박’ 안보동력 약화
英-中 밀착 가능성도 고려해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글로벌 외교안보 지형에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면서 우리 외교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영국발 신고립주의 신호탄이 미국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현행 아시아 리밸런싱(재균형) 전략이 중동은 물론 유럽발 변수까지 겹쳐 뒷걸음질 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틈을 타 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있는 중·러가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동북아에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EU의 공동 안보 전선이 영국의 이탈로 이완되면 대테러는 물론 대북 압박을 내건 북핵 외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안보 당국의 시선은 영국인들의 고립주의 표심이 미국으로까지 확산돼 11월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에 쏠려있다. 동맹 파트너십을 활용한 미국의 개입주의 전략이 타격을 입을 경우 미국 내에서 한·미 동맹의 재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신고립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는 벌써부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도 건드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도 브렉시트 이후 대유럽 관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영국을 지렛대 삼아 유럽은 물론 국제문제에 개입했던 미국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발생한 공백을 중국과 러시아가 파고들 수 있다는 점도 중요 변수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거나 남중국해 등 현안에 미묘한 태도변화를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영 동맹을 중심으로 구축된 세계질서에 익숙한 한국으로서는 다양한 변수들이 추가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유럽 최대의 군사 강국인 영국이 브렉시트로 EU 체제에서 탈피하면서 공동 안보전선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외교원 전혜원 교수는 “EU 내 최대 군사력을 보유한 영국의 부재는 EU의 공동안보 방위정책의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한편 브렉시트의 여파가 확산되면서 경제부처뿐 아니라 외교안보부처도 고위급을 현장에 파견해 변화하는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브뤼셀과 런던을 방문해 EU 및 영국 정부 관계자들을 잇달아 만났으며, 브렉시트의 최대 피해국인 일본도 29∼30일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사무차관을 파견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오늘 예정돼있는 장관 주재 정례 실국장회의를 브렉시트 관련 대 토론회로 전환해 고위급 파견 등 브렉시트 대응책들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