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경희 KLPGA 경기위원이 23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자택에서 늘 갖고 다닌다는 골프 규칙 재정집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리우올림픽 경기위원 선정 박경희 KLPGA경기위원

“한국의 여자골프 대표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요.”

박경희(61)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경기위원이 오는 8월 개막되는 리우올림픽의 골프 경기위원으로 초청됐다.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낙점’받았다. 리우올림픽에선 국제골프연맹(IGF)이 초청한 각국의 경기위원이 심판 역할을 맡게 된다. 여자 골프의 경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소속 경기위원 6∼7명이 주축이 되고 유럽여자골프투어(LET)에서 3명, 일본에서 2명, 중국에서 1명이 선임됐다. 세계 최강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을 고려하면 경기위원 1명 ‘배정’은 의외다.

23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자택에서 박 위원을 만났다. 리우올림픽 경기위원으로 선정된 배경을 물었더니 “인복을 타고난 모양”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박 위원의 올림픽 경기위원 선임 이유는 그의 설명이 없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박 위원은 영국에서 20년 넘게 거주했기에 영어 소통에 어려움이 없다. 게다가 해박한 골프 룰 지식을 갖췄고, 국내에서 열린 LPGA투어에서 외국의 경기위원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몇 해 전부터 아시아여자골프투어 경기위원도 겸직하고 있다. 올림픽 경기위원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스펙’이다.

올해로 경기위원 경력 15년째. 1974년 유학생 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떠났고 2002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박 위원은 천성적으로 부지런하다. 런던의 한국기업 지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등 지금까지 단 하루도 직장 없이 보낸 적이 없다. 늘 일을 하는 즐거움으로 살았던 것. 박 위원은 런던 근교의 서리에서 거주했는데 집 근처에만 골프장 20여 개가 있었다. ‘골프 천국’이었던 셈. 하지만 골프는 40세를 넘기고서 배웠다. 둘째 아들을 대학 입학시킨 뒤 1994년 골프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게 입문했지만 박 위원의 기량은 일취월장했다. 하루에 36홀을 돈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클럽에서 주최하는 회원을 위한 경기가 매주 열렸던 것도 도움이 됐다. 그리고 레슨에 열중했고 입문 1년여 만에 집 근처의 레더헤더 골프장에서 76타까지 쳤다.

아직 홀인원은 못 해봤지만 이글은 두 차례 남겼다. 한국에 잠시 왔을 때였다. 남편 친구들과 강원 춘천시의 라데나 골프장으로 갔다. 2팀 중 유일한 홍일점으로 출전했고 파 5홀에서 세 번째로 친 어프로치 샷이 홀 빨려 들어가 첫 번째 이글을 작성했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더니 1995년 국내의 한 대학에 교수로 채용됐다. 하지만 두 아들의 대학 졸업을 위해 박 위원은 영국에 남았고, 45세이던 2000년 메리스트우드대의 2년 과정 골프 매니지먼트학과에 입학했다. 남편의 권유도 있었지만, 골프를 돈 안 들이고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박세리가 LPGA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지 2년 지났을 때였다.

박 위원은 “최고령 학생이었다”며 “1주일에 한 번은 필드에서 라운드 테스트를 받았는데 20세도 안 되는 젊은 선수 출신들과의 경쟁이 힘에 겨웠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고 실기 통과 기준이던 핸디캡 13 이내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박경희는 실습을 위해 방학 중 한국에 와 골프 대회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때 경기위원이란 직책을 처음 알게 됐고,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KLPGA 경기위원이 됐다. 김광배 전 경기위원장의 도움이 컸다.

박 위원은 “2008년 대한골프협회 룰 교육을 이수했고, 2010년에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미국골프협회(USGA)의 룰 교육을 이수했으며, 오는 11월엔 영국왕실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가장 어려운 ‘룰 교육 레벨 3’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초보 경기위원 시절엔 실수도 있었다.

박 위원은 “어떤 대회에서 선수의 드롭 위치를 지정해줬는데 뒤늦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경기위원의 잘못된 판단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밝혔다.

박 위원은 지난 3월 올림픽 초청 공문을 받았지만 고민에 빠졌다. 중국으로 출장 갔다가 친하게 지내오던 크리스 팽 중국 경기위원에게 “경비 때문에 리우올림픽 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팽 경기위원은 펄쩍 뛰더니 “리우올림픽 여자골프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많은 4명이나 출전하고, 그래서 우승할 확률이 높은데 그런 영광된 자리를 박차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하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팽 경기위원은 또 경기위원은 소속 기관(KLPGA)에서 항공료를 부담하는 게 관례이고, 현지 체류 비용은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해결해준다고 귀띔했다. 박 위원은 뛸 듯이 기뻤다.

박 위원은 곧바로 리우올림픽에 초청된 사실을 KLPGA에 알렸다. 박 위원은 오는 7월 LPGA투어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크라운에도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경기위원으로 초청받았지만 국내 활동기간과 겹치기에 거절했다.

박 위원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오후 9시에 숙소로 돌아간다”며 “경기위원은 선수 못지 않게 체력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영국에선 주말 골퍼들도 룰 북을 들고 다닐 정도였다”면서 “영국인은 깐깐하다고 표현할 만큼 룰을 엄격하게 지킨다”고 기억했다.

박 위원은 경기위원을 천직이라고 표현했다. 박 위원은 “몇만 원 수준의 수당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면서 “단순히 보수만 따졌다면 지금까지 경기위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경기위원의 업무가 재미있고, 특히 일터(골프장)로 갈 때마다 항상 상쾌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