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그대 품으로 대지의 푸근함, 대지의 아름다움 속에서 느끼는 골프의 맛은 마시멜로와 같다. 달콤하면서도 또 찾고 싶은 그 맛이다. 2016년 작. 김영화 화백

2개월 전 중국의 한 단체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아시아 100대 골프장을 선정한다며 필자를 100대 골프 선정위원으로 위촉한다는 내용이었다. 좀 더 지켜본 뒤 결정하기로 했다.

이후 선정위원회 부위원장 겸 한국 대표를 맡은 A 씨의 끝없는 횡포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선정위원들은 반드시 골프장 한 곳을 추천해야 하고, 골프장 실사 라운드에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면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군림하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는 카×을 사용하지 않으니 위×에 가입하라, 그렇지 않으면 선정위원에서 탈락시키겠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또 바른말을 하는 선정위원을 탈락시켰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이 생각난다. 종살이를 하다가 갑자기 저수지 감시원이라는 완장을 차고 난 뒤 변해 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완장 하나로 모든 권력을 다 쥐었다고 잘못 생각한다. 완장이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진짜 권력을 쥔 주인은 언제나 완장 뒤에 숨어서 움직이기 마련이다.

‘명문’, ‘베스트 코스’, ‘세계 100대’, ‘아시아 100대’ 등의 간판을 좋아하는 국내 골프장들도 문제가 있다. 베스트 코스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나치게 경쟁하는 국내 골프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완장을 채워주는 꼴이다.

‘골프장에서 가장 싫은 골퍼가 누구냐’는 설문 조사를 보면 ‘잘난척하는 골퍼’가 늘 1, 2위에 오른다. 룰과 에티켓을 지키지 않거나, 스코어를 속이는 것은 지적해서 바로잡아 주면 된다. 하지만 본인만 보이고, 나만을 위한 골프를 하는 잘난 척하는 골퍼는 바로잡아 주기 어렵다. 캐디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본인이 잘못 친 스윙을 캐디 탓으로 돌리고 코스가 잘못 설계되었다는 등 남의 탓하는 것이란다. 원래 본인은 70대 스코어를 치는 사람인데 캐디와 골프장이 마음에 안 든다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람도 있다.

자기 생각과 자기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경청하고 또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 앞세우는 사람은 귀머거리나 다름없다는 인디언의 격언이 있다. 한자에 보면 들을 청(廳)자가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귀(耳)가 으뜸(王)이며, 열(十) 개의 눈(目)을 움직여 하나의(一) 마음(心)을 주시하는 것처럼 들어라’라는 것이다. H F 아미엘은 “타인에 대한 존경은 처세법의 제일 조건”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골퍼라면 절대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자만하는 순간 골프를 망치고 처세도 잃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