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수많은 근현대 미술작품을 보관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수장고. 천경자 화백의 진품 여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미인도(가운데) 역시 최근 감정을 받기 위해 검찰에 제출되기 전까지 25년 동안 이 수장고 안에 있었다. 자료사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 2인1조 4重인식 거쳐야 출입

30㎝두께 철근·콘크리트 구조… 온도 20~21℃ 습도 50% 유지

지문·카드키 인식·번호 입력후 다이얼 맞춰야 금고 문 열려

관장 등 출입허가 인원 4명뿐… 직원들 대부분 못가보고 퇴사

천경자 화백이 그린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미인도’가 잠시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를 떠났다. 검찰은 천 화백의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한 사건을 수사하며 작품을 감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미술관 측에 미인도 제출을 요구해 그림을 전달받았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이날 검찰에 옮겨지기 전까지 미인도는 1991년 위작 논란이 제기된 이후 25년 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깊숙이 보관돼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는 몇몇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미술관 직원들에게도 베일에 싸인 장소다. 미인도만 해도 실제로 작품을 본 사람은 미술관 직원 중에도 몇 명 안 된다. 이처럼 수장고가 철저한 통제와 보안 속에 놓여 있는 것은 수장고에 천문학적인 가격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이기도 한 미술작품 수천여점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경우에도 연면적 3898㎡에 이르는 9개의 수장고에 현재 1만222점의 작품 및 자료(작품은 미인도 포함 7998점)가 보관돼 있다. 작품 보험가액만 1183억 원이다. 1969년 개관 당시 6개였던 수장고는 2002년 3개가 증축됐고, 2011년 리모델링을 통해 모두 9개가 됐다.

과천관의 수장고에는 한국화 1162점, 회화 4307점, 조각 1944점, 그외 공예, 디자인, 건축, 서예, 미디어 아트 등의 작품이 보관돼 있다. 천 화백의 유족이 위작 논란과 관련해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하는 등 문제를 일으킨 4호 크기의 자그마한 작품 미인도도 이곳에 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수장고에 보관중인 윤효중의 조각작품 ‘현명’(왼쪽)과 김환기의 ‘론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미인도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991년 선보인 후 공개되지 않고 현재까지 수장고 깊숙한 곳에 어둠에 싸인 채 보관돼 왔다. 서울관과 덕수궁관에도 규모가 작은 수장고가 있다. 서울관은 전시 작품과 대여를 위한 ‘미술은행’ 작품을, 덕수궁관에는 전시작품을 보관하고 있다.

미술관 관계자들은 전시 업무 못잖게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문화유산으로 후손에게 물려주는 기능을 하는 수장고 관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수장고에는 작품의 훼손이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설비와 보안시스템이 엄중하게 갖춰져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의 경우 30㎝ 두께의 철근-콘크리트 슬래브 구조로 지어졌다. 작품이 걸리는 랙은 지진에도 끄떡없도록 내진 설계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출입문이 일단 닫히면 100% 방수·방범이 가능하다.

내부는 미술품 보관에 필수적인 항온·항습 기능은 기본이다. 벽체에 부착된 센서가 수장고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체크해 중앙의 자동제어시스템에 보내면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된다. 이렇게 해서 수장고의 온도는 20±4도, 습도는 40∼70%를 기준으로 대개 20∼21도, 50%대에서 유지된다. 빛에 의한 훼손 방지를 위해 조명도 차단된다.

보안시스템은 2008년 12월 서양화가 주경(1905∼1979)의 1930년작 연필 드로잉 ‘인물습작’을 분실한 이후 대폭 강화됐다. 수장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두 번의 신원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 일단 수장고 시설에 접근하려면 지문 인식과 카드키 인식, 번호 입력 등 세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장고 시설 내에서 개별 수장고에 들어가려면 전용 출입문을 통과해야 한다. 앞서 3중 인식 과정을 다시 거친 뒤 다이얼 번호를 한 번 더 맞춰야 금고형 도어의 문이 열린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쳐 수장고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진다. 24시간 내부 침입자를 감지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다.

그나마 국립현대미술관 직원 중에 수장고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도 미술관장과 학예연구2실장 외에 ‘레지스트라’로 불리는 수장고를 지키며 작품을 관리하는 전문직 공무원인 작품출납공무원과 작품출납공무원보 등 4명으로 제한돼 있다.

2인 1조가 원칙이기 때문에 관장조차 혼자서는 수장고에 들어갈 수 없다. 출입이 철저히 통제돼 미술관 직원들도 수장고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채 퇴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장고 내부에는 작품의 특성에 맞춘 각종 수납공간이 설치돼 있다. 이동식 유물 수장대와 선반식 수장대 외에 중소형 조각작품을 수납할 수 있는 팰릿트랙, 이동이 가능한 회화 보관용 회화랙과 문서를 보관할 수 있는 모빌랙 등이 갖춰져 있다. 보관된 작품들은 출입이 가능한 직원들에 의해 1년에 한 차례씩 매년 10월쯤 40여 일에 걸쳐 점검을 받는다. 직원들은 1만여 점에 이르는 모든 소장품을 일일이 눈으로 상태를 점검해 기록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50억 원 정도의 예산을 들여 작품을 구입해 소장품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46억 원으로 100여 점을 구입했고, 300점 정도 기증을 받았다. 올해 작품 구입 예산은 조금 더 늘어 53억 원이다. 매년 작품이 늘면서 작품 보관 공간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일부 작품은 수장고 내 복도에까지 비치돼 있다. 이 때문에 전시형 수장고로 지어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5층 규모·연면적 1만9856㎡)이 2019년 5월쯤 완공되면 상당수 작품을 청주관으로 옮기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