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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바른사회 공동대표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제도’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대기업집단 지정의 기준이 되는 자산 규모가 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상향 조정되고 공기업은 대기업집단에서 일괄 제외된다.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인 지주회사 자산 요건도 1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그동안 기업에 ‘족쇄’로 작용했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순간 상호·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 제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의 사전 규제와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공시의무 등 사후 규제를 받는다. 공정거래법 외에도 중소기업·조세·금융 등 38개 법령에서 지정제도를 연결 고리로 각종 규제가 따른다. ‘성장 사다리’를 타지 않으려는 또 다른 피터팬 현상이 나타난다.

그뿐 아니라,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아닐 수 없다. 2016년 4월 기준 카카오그룹의 자산(5조1000억 원)은 삼성그룹(348조2000억 원)의 68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자산 규모가 5조 원을 넘는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규제를 받는다. 전혀 이질적인 민간기업집단과 공기업집단도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동질시된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지정 제외되는 하위 집단은 공정거래법은 물론 공정거래법에 원용된 38개 법령의 규제가 일괄 면제돼 그만큼 기업 활동의 폭이 커진다. 신사업 진출, 사업영역 확대 등 중견 그룹이 성장 사다리를 탈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공기업 일괄 해제도 전향적인 조치다. 이로써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고집하지 않고 ‘다른 것을 다르게 간주하는’ 정책 사고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와 공시의무는 종전의 기준(자산 5조 원)이 그대로 유지된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완화로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게 아니냐는 저간의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지만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몰고 가선 안 된다. ‘계열사 조직’을 선택하든 ‘사업부제’를 선택하든 이는 기업의 ‘사적 자치’이다. 계열사 조직을 택한 경우 그룹 차원의 내부거래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부당 내부거래가 아니라면 이를 총수 일가 사익편취로 의제해선 안 된다. 사익편취는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공시 강화 등 시장감시 기능을 통해 규율할 수 있다. 따라서 사익편취 기회 규제도 자산 10조 원으로 완화하는 게 합리적이다.

한편, 공정위는 3년을 주기로 국민경제 규모의 변화, 지정집단 자산총액 변화 등을 고려해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규제는 유연하게 운영돼야 한다. 따라서 기준선을 주기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방향성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지정 기준의 타당성 재검토가 기업에 규제 불확실성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규제 강화의 개연성은 명시적으로 배제돼야 할 것이다.

이번 조치는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당연선’으로 간주하고 기준선을 조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과연 유지돼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더욱이 일감 몰아주기, 사업 기회 편취에는 증오가 묻어 있어 용어조차 적절치 않다. 기업은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 따라서 ‘크다는 사실’이 규제의 근거가 돼서는 안 된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기업의 굴레가 돼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