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전승훈 기자 jeon@

메가딜 노리고 속속 진출

미국 등 서구의 대형 법률사무소(로펌)나 컨설팅업체들이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에서 기업재편이나 구조조정에 대한 법률자문 또는 컨설팅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를 안고 속속 대(對)아시아 업무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급격한 경기 감속과 저유가 등 자원 약세에 따른 신흥국의 경제 성장 부진으로 아시아의 많은 기업이 조만간 기업 체질 개선이나 법인 통폐합에 나설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 기업들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섣불리 이 같은 비즈니스 영역에 도전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의 대형 로펌인 레이섬 앤드 왓킨스 (Latham & Watkins)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미국에서 저유가로 인해 최근 에너지 관련 기업의 파산 업무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으로 사무실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 기업재편 전문가로서 활동해 온 이 변호사는 아시아에서 법률자문 업무를 경험해 본 적이 없지만, 향후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것에 대비해 증강된 아시아팀에 합류할 예정이다. 그는 FT에 “(아시아에서의 업무가) 더욱 엄청나고 재미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며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바빠질 것임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파산이나 채무 정리 건수가 압도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조사 결과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AlixPartners)가 지난해 실시한 관련 조사에서 응답자의 90% 이상이 아시아지역에서 기업재건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도의 70%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4월의 ‘아시아 유동성 스트레스 지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로 올라섰다고 밝힌 바 있다. 유동성 스트레스 지수는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투기등급)인 기업 가운데 유동성이 가장 취약한 기업의 비중을 나타내는 척도로 수치가 높을수록 채무변제능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블룸버그는 최근 계량적 부도 위험 모델을 이용해 중국 신용평가사들이 회사채 최고등급인 AAA등급을 매긴 상장회사들을 분석한 결과 이 회사들 중 57%가 실제로는 부도 위험이 투기등급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FT는 “아시아에서는 몇 년째 금융완화가 이어진 후 경기가 감속돼 금융완화 시기 불어난 채무에 대한 기업의 변제능력이 약해지고 있다”며 “일부 광산이나 제철, 해운회사 등은 이미 혹독한 압력에 처해 있으며 더 무서운 것은 이 상황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아시아 각국에서는 차례로 채무정리나 기업재편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11개월째 동결하며 “향후 기업 구조조정의 진행 상황 등을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에 빠진 기업을 구제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런 중국에서조차 일부의 기업에 대해서는 설사 국유기업일지라도 도산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도에서는 5월부터 디폴트에 빠진 기업의 지배권을 채권자가 획득하기 쉽도록 하는 새로운 기업도산법이 성립됐다. 따라서 이 같은 제반 환경을 고려할 때 글로벌 로펌이나 컨설팅업체들에 아시아 기업 자문 시장은 ‘블루오션’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FT는 서방의 글로벌 로펌 등에 “아시아 기업은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과 다르다”며 아시아 시장 진출에 대한 주의를 환기했다. 아시아기업은 채무정리나 기업재편에 있어 유럽이나 미국 기업의 선례를 따르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또 효율적이고 예측가능한 프로세스로의 진행과는 거리가 멀다고도 지적했다. 보통 기업재편 전문가들은 문제를 안고 있는 기업에 대해 현금 자산이 다 소진돼 구조조정 방향에 대한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전에 여유를 갖고 구조조정을 검토하도록 조언한다. 그러나 아시아 기업들은 막바지 상황이 되고 나서야 전문가들에게 컨설팅을 요청하는 전화를 해온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일하다 최근 아시아 업무에 투입된 레이섬 앤드 왓킨스의 또 다른 변호사는 “아시아에서는 유럽, 미국과 달리 운용실적이 풍부한 법 체계나 절차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여기서의 일 대부분은 새로운 분야의 개척이고 보다 풍부한 창조성이 요구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