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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재순 前국회의장 ‘장례 스토리’ …영면 뒤 더 큰 울림

국회葬임에도 예포·예총 생략
84세 성악가가 ‘선구자’ 불러
“소통과 배려 잊지 않으셨던 분”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폈던 7선 국회의원 김재순(사진) 전 국회의장의 이타적 삶이 영면 후에도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다.

1일 국회와 문화계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장으로 열린 김 전 의장의 영결식에선 예포나 예총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국회장은 대개 영결사와 조사, 헌화 및 예포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날 영결식에서 예포나 예총 소리 대신 귀에 익은 가곡 ‘선구자’가 울려 퍼졌다. 84세의 고령인 성악가 김신환 씨가 얼마 전 뇌출혈로 쓰러져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열창했다. 영결식장에 모인 전·현직 의원들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의 아들이자 월간 잡지 ‘샘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구 대표는 1일 “예포 행사를 생략하고 ‘선구자’ 공연을 한 것은 예술을 사랑했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며 “국회장에도 형식이 있겠지만 굳이 예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면 아버지가 평소 즐기셨던 ‘선구자’를 들려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7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인은 7선의 국회의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샘터’를 창간한 출판인이자, 문화와 예술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문화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례식장 입관식에서는 고인의 팔에 채워진 손목시계가 화제가 됐다. 수의를 입히고 입관하는 절차상 고인에게 거추장스러운 손목시계를 채우는 것은 드문 일. 그러나 생전에 시간 약속을 누구보다 소중히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들이 시계를 함께 넣었다.

김 대표는 “국산 브랜드 오리엔트 시계인데 돌아가시기 하루 전까지도 손목시계를 찾으셨다”며 “시계가 아니라 아버지 몸의 일부인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족들이 합의해 시계를 채워드렸다”고 말했다.

1970년 4월 ‘샘터’를 창간하게 된 데에도 실은 고인의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고인은 1967년 한국이 처음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할 때 산파 역할을 했다. 사회적으로 홀대받던 기능인들을 장려하고 국위 선양에 이바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기능인들은 금메달을 따고서도 뿌리 깊은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고인은 기능인들의 자신감을 높여보자는 생각을 했고, 이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는 ‘샘터’ 창간으로 이어졌다.

‘샘터’사 기자들에게 ‘호랑이 할아버지’로 불렸던 김 전 의장은 선이 굵으면서도 정이 많았던 인물로 주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김 대표는 “정치인이자 출판인, 문화예술인으로서 아버지는 대화와 소통,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으신 분”이라며 “그렇게 창간한 ‘샘터’를 지금까지 단 1호도 빠짐없이 발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샘터’는 현재 통권 556호를 맞이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