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낚였습니다. ‘A가 1위를 차지했다’는 가요기획사의 보도자료였습니다. 신곡을 공개한 직후 특정 음원 사이트에서 1위에 올랐다는 것이었죠. 그 음원 사이트에 접속해봤습니다. A는 1위가 아니었죠. 발표 직후 팬들이 몰려 ‘잠시’ 1위에 올랐을 때 이 장면을 캡처한 후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가요계에는 1위가 참 많습니다. 숱한 음원 사이트 순위 외에도 KBS 2TV ‘뮤직뱅크’와 SBS ‘인기가요’가 매주 새로운 1위를 발표합니다. 케이블채널 Mnet ‘엠카운트다운’과 MBC뮤직 ‘쇼 챔피언’, SBS MTV ‘더 쇼’ 등도 순위제를 채택하고 있죠. 이 때문에 몇몇 유명 아이돌 그룹은 한 달 남짓 활동하며 10관왕 이상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중이 체감하는 1위가 아니라 자화자찬이거나 “1위에 올랐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위한 하나의 미끼에 머물곤 하죠.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습니다. ‘뮤직뱅크’는 5월 27일 생방송 도중 집계 오류로 잘못된 순위를 발표했죠. 뒤늦게 음반 판매 점수를 바로잡자 1, 2위가 뒤바뀌는 상황이 초래됐습니다. 당초 1위로 호명됐던 AOA는 상처를 입었고, 뒤늦게 1위 트로피를 받게 된 트와이스는 머쓱해졌죠.

‘뮤직뱅크’ 제작진은 “AOA에게 준 트로피를 트와이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AOA와 트와이스의 다친 마음을 위로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런 제작진에게 “순위제 유지 여부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각 방송사와 음원 차트마다 가수들의 순위가 크게 다르고, 번번이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는 마당에 순위를 잘못 발표하는 사고까지 발생했으니 트로피의 권위는 이미 크게 추락했죠.

가요계 관계자들도 “순위는 방송사가 가수들을 길들이는 미끼”라고 말하곤 합니다. 유력 기획사 출신 가수들이 순차적으로 1위에 오르기 위해 컴백 일정을 조율하고, ‘내가 받으면 다행, 네가 받으면 요행’이라고 생각하는 트로피는 유명무실하다는 것이죠. 반면 MBC ‘쇼 음악중심’은 지난해 11월 일찌감치 순위제를 폐지한 후 신예 트로트 듀오 두스타 등에게 무대에 오를 기회를 주는 등 다양한 무대를 꾸미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굳이 순위제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거죠.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보유한 지상파의 영향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음악 프로그램의 순위제는 가요 관계자들이 물 수밖에 없는 미끼입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다릅니다. 5월 27일 방송된 ‘뮤직뱅크’의 시청률은 1.4%였죠. 맛도 없고 긴장감도 없는 미끼를 더 이상 물려 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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