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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영·김삼순·고은찬·김혜진 이은 ‘공감女’로…‘오해영’ 화제

흙수저 보통女의 찌질한 일상
부족한 외모에도 삶에 자신감
곁에는 훈남 연인 ‘대리만족’

김정은·김선아·황정음 이어
서현진 ‘2016 로코퀸’ 등극

“‘저 남자가 내 애인’이라고 왜 말을 못하냐고”라고 다그치는 재벌 2세에게 강태영(‘파리의 연인’·김정은)은 울먹이며 외쳤다. “이 꼴을 하고 어떻게 그래요?” 삶과 사랑이 고달픈 김삼순(‘내 이름은 김삼순’·김선아)은 술을 마시며 읊조렸다. “아버지, 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이들을 보며 공감한 지 어언 10년.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에도 우리는 또 다른 강태영과 김삼순을 만났다. “현실은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예상을 크게 벗어난다”는 김혜진(‘그녀는 예뻤다’·황정음)과 “나는 쪽팔리지 않는다. 더 사랑하는 게 쪽팔린 건 아니다”라고 자기 위안 삼는 오해영(‘또 오해영’·서현진·사진)이 현재를 살아가는 20∼30대 여성의 마음을 대변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언제 어디에나 ‘캔디’가 산다 = 그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강태영은 옥탑방에 살았고, 김혜진은 인턴 자리가 아쉬운 청춘의 고달픈 자화상이었다. 시대를 관통하는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로코) 드라마였던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은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오해영도 마찬가지다. 그들 가족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노래방에서 10만 원이 나오도록 놀다가 3만 원 깎는 정도다.

맞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흙수저’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를 챙겨보는 대중은 보통 스스로를 흙수저라 생각한다. 드라마가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공감’보다 큰 무기는 없다. 드라마 주 시청층이 20∼50대 여성임을 감안할 때 그들이 “내 얘기”라고 말한다면 일단 성공이다.

하지만 케이블채널 tvN ‘또 오해영’은 기존 로코에서 한 발 더 나간다. ‘흙해영’이라 불리는 오해영(서현진)보다 여러모로 잘난 동명이인 오해영(전혜빈)을 배치해 상황을 비튼다. 외출했다가 같은 옷을 나보다 세련되게 연출한 여성을 만났을 때 느끼는 절망처럼, 항상 나보다 뛰어난 동명이인이 곁에 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금해영’으로 분류되는 오해영의 삶도 순탄한 건 아니다. 그 역시 파혼의 상처를 간직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상처 입은 여성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다.

◇환골탈태를 꿈꾸는 캔디 = 드라마는 판타지다. 현실을 대변하되 현실은 아니다.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로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외모가 부각되지 않는 것도 공감 포인트다. 강태영은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했고, 파티시에를 꿈꾸는 김삼순은 ‘뚱뚱’과 ‘통통’ 사이에 놓였다. 김혜진은 안면홍조증과 지독한 곱슬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고, 오해영 역시 술 마시고 망가지기 일쑤다. 오죽하면 엄마가 “니가 술을 끊어? 개가 똥을 끊지”라고 했을까. 심지어 고은찬은 남자로 오해받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안다. 그들이 싹 달라진 모습으로 돌변할 것이란 걸. 반드시 외모의 변화를 뜻하는 건 아니다. 김삼순은 살을 빼지 않았고, 고은찬도 털털한 스타일을 고수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는 순간 그들의 결핍이 채워졌다.

또 한 가지, 그들 곁에는 멋진 연인이 있었다. 재벌 2세 혹은 그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갖췄고 대개 엄청난 미남이다. 박신양, 현빈, 공유, 박서준, 에릭이 그들 곁을 지켰다. 물론 현실과 괴리가 큰 대목이다. 하지만 ‘대리만족’도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은가?

◇‘캔디=로코퀸’= 인기 로코 드라마의 계보를 좇다 보면 로코퀸의 변천사도 알 수 있다. ‘파리의 연인’의 김정은이 시작이었고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커피 프린스 1호점’ 이후에는 윤은혜가 한동안 각종 로코 드라마 섭외 1순위였다. 현재는 ‘그녀는 예뻤다’에 이어 25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운빨 로맨스’의 여주인공 자리까지 꿰찬 황정음이 으뜸이다. 여기에 tvN ‘식샤를 합시다2’에 이어 ‘또 오해영’으로 연타석 홈런을 친 서현진이 새롭게 명함을 내밀었다.

로코퀸이 된다는 건 대단한 명예다. 드라마 섭외가 줄을 잇고, CF퀸 타이틀까지 석권할 수 있다. 하지만 변덕이 심한 대중은 이내 “또 비슷한 캐릭터를 맡았다”고 입을 삐죽댄다.

거창한 수식어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김정은은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 ‘루루공주’에서 재벌 상속녀 역을 맡았다가 대중의 외면을 받았고, 윤은혜 역시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상위 1% 재벌녀를 연기했지만 고개를 떨궜다. 그들의 흙수저 이미지를 사랑했던 대중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었던 셈이다.

상처를 준 남자에게 “언젠가 나 때문에 울 거야. 울길 바래”라고 말하고, “별일 아니라는 말보다, 괜찮을 거란 말보다, 나랑 똑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백배 천배 위로가 된다”는 오해영. ‘쿨하지’ 못하다 해도 이게 진짜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오해영은 조금 ‘찌질’해도 사랑받는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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