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경미 회장이 지난 15일 경기 가평의 프리스틴밸리 골프장에서 아이언 샷을 한 뒤 볼 방향을 지켜보고 있다.

최경미 ㈜긍미래 회장

최경미(52) ㈜긍미래 회장은 지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한때 레슨프로 자격증을 준비하는 등 골프에 빠져 살았다. 사업상 남성들과의 라운드 기회가 잦았고, 볼이 잘 안 맞는 날이면 일행에게 선약이 있다고 둘러대곤 골프장을 떠나 곧바로 연습장으로 달려가 프로에게 레슨을 받으며 샷을 점검하곤 했다. 그가 내기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돈보다 승부에 대한 집착이 컸기 때문. 1타라도 더 잘 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단다.

‘미래로 뻗어 나가자’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는 최 회장은 얼마 전까지 해오던 영화 콘텐츠 제작 사업을 접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홍보 영상과 디자인, 외식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한때 방송프로그램 제작사를 설립했지만 3년 전 정리했다.

하루하루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고 있는 최 회장을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일식 전문점 ‘스시코’에서 만났다. 스시코는 최 회장의 사업체이며, 경남 창원시의 특급 호텔에선 직영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 회장은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기업의 홍보영상물을 제작해주는 디자인회사를 차렸고, 1999년 서초동에 갤러리를 위한 건물을 구입했다. 최 회장은 “갤러리 공사를 하던 중 유흥가로 둘러싸여 있는 건물을 갤러리로만 쓸 게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과 갤러리를 겸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듣고 일식 전문점을 차렸다”고 설명했다. 갤러리 사업도 겸하고 있어 일식집 곳곳에는 유명 화가의 그림과 조각품 50여 점이 걸려 있다. 장소가 협소해 100여 점은 창고에서 보관 중이다.

최 회장은 30대 초반이던 1994년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살던 때였다. 일본에서는 젊은 여성이 골프 치는 예가 드물었다. 최 회장은 미국에 거주하는 가족과 헤어져 사는 ‘기러기’다. 고위공직자 출신인 남편은 지금 미국의 한 대학에 교환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늦게 본 딸을 돌보고 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딸이 여섯 살 됐을 때 프로골퍼로 키워보고 싶어 골프를 가르쳤지만 6개월 만에 ‘꿈’을 접었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골프 선수로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의 딸은 올해 미국의 명문 와튼스쿨에 입학했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던 시절에 최 회장은 ‘6개월 안에 싱글 골퍼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연습장에 등록했고 회원권을 구입했다. 경기 성남시의 남서울골프장 여성회원권이다. 일본에서 90대 타수를 넘겼던 그의 골프 기량은 한국에서 만개했다. 지인이 보유하던 제주 해비치 골프장 인근 별장을 빌려 2개월 동안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박 4일간 골프 연습에 매달렸다. 기량이 향상되자 주변에서 “이참에 티칭 프로 자격이라도 획득하라”고 부추겼다. 최 회장 스스로도 은근히 욕심이 발동했지만, 비거리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어 포기했다.

최 회장은 일 때문에 골프채를 잠시 손에서 놓기도 했다. 방송프로그램 제작업에 뛰어들면서 혼자 3개 영역의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짬을 내기가 어려웠다. 3∼4시간 잠자는 것마저 사치로 여겨질 만큼 바빴다. 도저히 골프를 할 수 없었고, 6년 동안 골프장에 출입하지 못했다. 최 회장은 “방송 쪽 일을 정리하고서야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며 “이젠 체력 단련을 위해 골프를 즐긴다”고 설명했다. 한창때는 70대 중반에서 80대 초반 스코어를 유지했다. 베스트 스코어는 10년 전의 76타. 최 회장은 “예전엔 드라이버로 남편과 엇비슷한 180m를 날렸지만 이젠 꿈 같은 얘기”라면서 “요즘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스코어에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얼마 전 한 골프모임에서 195m를 날려 장타상을 받았다. 요즘도 시니어 남성들과 화이트 티에서 함께 친 적이 많다. 홀인원은 인도네시아 코타키나발루의 보르네오골프장에서 기록했다. 145m였지만 오르막 지형이어서 넉넉하게 3번 우드를 잡았는데 편하게 치다 보니 공이 그린 입구 턱을 맞고 퉁기더니 사라졌다. 남성들과의 라운드에서 전반 시작하자마자 8개 홀 모두 파를 기록해서 상대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최 회장은 평생을 피트니스센터에 가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 빼어난 미모로 각종 매체의 표지모델에 자주 등장했었다는 최 회장의 건강 관리법은 시간만 나면 걷는 것. 최 회장은 저녁에는 아무리 늦어도 1시간 30분 정도 집 근처를 걷는단다. 골프장에서도 카트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닐 때가 많다. 골프를 하면서 안 좋았던 기억 하나.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유명 정치인과의 라운드였다. 후덕한 외모와는 달리 홀마다 캐디를 쥐잡듯 심하게 다뤘단다. 최 회장은 “샷이 엉망이 될 때마다 캐디를 탓하는 모습을 보고 골프 매너가 저 정도면 다시 볼 상대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며 “스트레스를 풀러 나갔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온 꼴이 됐다”고 말했다.

골프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골프는 뜻대로 안 되는 스포츠이고, 또 성격이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몰입형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골프는 싫증 나지 않게 하는 매력 있는 스포츠”라며 “스트레스 치유에는 골프가 최고 명약”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수입 일부를 종교단체나 학교 등에 개인적으로 기부해오고 있으며 ‘함께하는 삶’이라는 봉사단도 운영하고 있다. 최 회장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기쁨은 버디를 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딸의 고교 졸업식 참석차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최 회장은 26일 미국의 지인들과 사가모어 골프장 8번 홀(파3·120m)에서 생애 두 번째 홀인원을 했다고 알려왔다.

글·사진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